기아차 기술유출…中과 격차 1.5년 줄듯

머니투데이 이진우 기자 2007.05.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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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원 공모 기술 통째로 넘겨…보안의식 높여야

쏘렌토 및 하반기 출시예정인 신차 'HM(프로젝트명)' 등의 생산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검찰에 적발된 10일 서울 양재동 기아차 본사는 '비상보안관리팀'을 중심으로 대책마련에 부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중국에서 한국 자동차를 모방한 '짝퉁' 모델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주요 생산기술이 사실상 통째로 유출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이번 기술유출 사건이 전직 임직원들은 물론 현직 직원까지 가세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협력사와의 기술용역 계약시 보안서약을 맺고 기술 데이터 등을 폐기할 경우 반드시 확인토록 하는 등의 보안대책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같은 전현직 직원들의 '공모'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임이 드러난 셈이다.

기아차 (105,600원 ▲2,100 +2.03%)의 한 관계자는 10일 "현재 관련부서를 중심으로 자동차 생산기술이 어느정도까지 유출됐는 지를 파악 중"이라며 "그나마 모든 핵심기술이 빼돌려지기 전에 적발돼 다행이지만 어느정도 피해는 불가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 산업기밀센터가 기아차 퇴직직원들이 신차 개발계획 및 각종 품질기술 자료 등을 빼내 중국으로 유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면서 전모가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결과 이들은 자동차기술 컨설팅 회사인 A사를 운영하면서 평소 친분이 있는 직원들에게 접근한 뒤, 승용차 쏘렌토와 승합차 카니발 등의 차체조립 및 검사기준 관련자료, 신차 정보 등을 건네 받아 중국 C자동차측에 넘겨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넘겨준 자료는 모두 영업비밀로 분류되는 사안들이다.

이번 사건은 이미 턱밑까지 추격해 오고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기술 격차가 3년에서 1.5년(2010년 기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충격이 크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규모마저 산출되지 않고 있다.


기아차는 이에 대해 중국으로 관련기술이 모두 유출됐을 경우 2010년까지 중국시장에서의 손실액이 4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시장으로 범위를 넓히면 무려 22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상당수 기술은 유출되기 전에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파장이 커지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내부적으로 보안시스템에 대한 긴급 재검검에 나서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전현직 직원들이 마음 먹고 조직적으로 기술을 빼돌릴 경우 이를 적발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반도체와 휴대폰 등 전기·전자, 자동차, 조선 등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들이 저마다 보안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비슷한 기술유출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적발된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건수는 92건,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약 95조9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 중 전자와 정보통신이 67건으로 73%를 차지했고, 자동차와 조선 등에서도 기술유출 시도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산업기술을 유출해 온 범인들은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대부분 전현직 직원(79건, 86%)이거나 협력업체 및 기술용역 업체들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의 중요 시설에 대한 출입통제, 첨단 보안장치 도입 등을 통해 보안을 강화하고 있지만 내부 공모가 있을 경우 이를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단순히 제도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보안교육 등을 통해 직원들의 '기술안보' 의식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뿐 아니라 주요 업종별 단체와 정부 차원에서도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막기 위한 제조마련과 보안관련 환경조성에 애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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