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 개인파산과 도덕적 해이

김관기 변호사 2007.04.23 12:50
글자크기
[법과시장] 개인파산과 도덕적 해이


보험제도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일으킨다. 자신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보험회사가 돈을 내준다면 보험계약자는 아무래도 자기 물건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손해 중 적어도 일부만이라도 보험계약자에게 부담하게 함으로써 상당히 예방할 수 있다.



반면 보험가입자의 도덕성을 진작하는 것으로는 결코 도덕적 해이가 방지될 수 없다. 왜냐하면 도덕적 해이 문제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고, 특정 상황에 처한 개인의 합리적 행동방식이기 때문이다.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험제도가 있으면 위험이 크고 또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자가 먼저 보험제도를 이용하려 할 것인 반면에 위험이 작은 자는 보험에 가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재보험이 있으면 불이 나기 쉬운 목조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가입을 신청할 것이고 위험이 덜한 석조주택 소유자는 보험에 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보험제도의 존재근거가 위험해진다.

건강보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발병한 사람 또 곧 발병할 사람이라면 만사 제치고 가입하려고 할 것인 반면에 그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젊은이들은 이들과 동일한 조건으로는 가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역선택은 범죄 감시와 처벌로 통제하는 반면 어쩔 수 없는 사회정책적 요구에 의해 위험이 작은 사람들에게도 강제로 보험에 가입하게 함으로써 해결된다. 의료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은 위험이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하나의 보험체제에 편입함으로써 최소한의 사회연대를 추구하고 역선택을 방지한다.


법률에 의해 채무자를 면책하는 파산제도는 주로 채무자의 선택에 따라 채무자에 대한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는 손해를 채권자에게 입히기에 어찌보면 법률의 자기부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산제도는 파산이라는 경제적 현상을 규제하는 것이기에 경제적·실질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금융채권자는 채무자의 불이행을 보험사고로 하여 보험료를 내고 다른 금융기관에 보험을 들거나 그 선택에 따라 스스로 여유자금을 축적하여 자기보험을 유지한다. 금융채권자는 자신에게 발생하는 비용을 채무자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에 결국 실질적인 보험계약자는 채무자들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파산에 의하여 면책을 받을 권리를 미리 포기할 수 없기에 파산제도는 결국 사회보험인 것이다.

보험인 이상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 문제도 당연히 예측된다. 개인은 미래 상환여력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소비를 우선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일 수 있다. 또 일부러 채무를 늘리고 그것으로 자산을 취득해 이를 감추어 놓거나 면제재산으로 변형해 놓는 역선택도 당연히 예상된다.

그렇지만 아무리 면책을 해준다 한들 자신의 실패를 공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절차를 거치는 파산은 사회적 낙인이라는 감정적 비용을 채무자에게 부과한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억지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보험자계약자 부담 비용이다.

파산을 신청할 자격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할 때까지 파산을 신청하지 아니한 채무자가 대부분인 것은 심리적인 억제효과를 충분히 증명해 준다. 역선택에 대하여는 파산범죄로 취급하여 형사처벌을 하고 또 면책을 부인하는 장치를 두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파산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파산 선고 대상을 제한하자고 하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의 사례는 금융소비자만의 것이 아니다.

공적자금에 의한 보장이 있다고 주택자금, 창업자금 명목으로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집행한 것은 누구인가. 파산이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이와 같은 관치금융 내지는 금융사회주의의 집행기관 쪽에서 나온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