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위기론…세가지 가능성

머니투데이 뉴욕=유승호 특파원 2007.04.0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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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리포트]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의 美쇠락 시나리오

미국 경제에 '지진'이나 '폭풍'에 비유될 정도의 위기가 닥친다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폭풍이 우리에게도 몰아닥칠 수 있다. 당장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할 경우 한국은행이나 국내 기업 등이 월가에 투자해놓은 달러자산에 막대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수출 전선에 빨간 불이 켜지고 주식시장은 패닉에 빠질 수 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미국 경제의 위기론은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그 가운데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43.역사학)가 저술한 '콜로수스: 미국 제국의 성쇠(Colossus: The Rise and Fall of the American Empire)'는 미국 경제에 닥칠 수 있는 위기를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다각도로 접근,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역사학자인데도 월가의 투자설명회에 연사로 초청받기도 한다. 지난해말엔 월가 최고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스티븐 로치가 주선한 메릴린치 투자설명회에서도 강연했다.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 정치.금융사 교수를 지내다 2004년 하바드대로 옮겼다. 그는 제국주의(Imperialism)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나 금융사 강의도 병행해왔다.

퍼거슨 교수는 미국이 20세기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사실상의 '제국(Empire)'이면서도 자신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 과거 다른 제국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쇠락 가능성을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경제적 위기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모래성이 단 한 알의 모래가 추가되면서 무너지듯이 미국의 재정 위기는 그렇게 닥칠 것이다. 국채 가격이 폭락할 줄 알면서도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맨 처음 행동에 옮기기를 주저한다"

77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이 수년내 본격적으로 사회보장과 노인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재정에 위기가 닥칠 것이란 진단이다. 베이비부머들에게 이들 혜택을 제공하려면 45조 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채를 대량 발행하든지 아예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는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란 시나리오이다.

그의 두번 째 진단은 섬뜩하다. 오늘날 세계 상황이 세계 1차대전 직전인 1914년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그는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금융시장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그때와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월가 투자자들에게 그의 경보가 먹히는 모양이다.


그는 1880~1914년을 '제1차 국제화(글로벌라이제이션) 시기'라고 부른다. 당시 세계 경제는 탄탄했고 물가는 안정돼 있었으며 국제 교역이 늘어나고 자본시장은 호시절을 구가했다고 한다. 그때도 오늘날의 미국처럼 대영제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는 중동에서 미군이 조기 철수한다면 힘의 공백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미국 공화당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입맛에 맞다. 그는 컬럼을 통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조기 철수를 요구하는 민주당을 비난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의 위기는 그가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부르는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 관계에 이상이 생길 경우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물건을 팔아 번 돈을 다시 미국에 빌려줘 미국의 채권국이다. 미국인들은 소비하고 중국인들은 저축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면 중국 자신도 디플레이션을 겪게 돼 공동운명체로 묶여 있다. 하지만 영국과 독일의 경제 상호의존이 1차 대전으로 깨진 바 있다"

퍼거슨 교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런던 타임스는 퍼거슨 교수를 '같은 세대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다른 교수로부터 "제국주의에 명분을 제공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국 경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미국 경제 의존도가 더욱 커질 것이다. 24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해외투자도 본격 늘어나기 시작했다. 퍼거슨 교수의 위기론을 황당한 논리로 치부해버리거나 '위기 보험'을 들어두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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