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위험한' 투자자 국가 제소제

송기호 변호사 2007.04.0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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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시장]'위험한' 투자자 국가 제소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법률시장 개방이 앞당겨진 점은 긍정적이다. 필자는 졸저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법률시장의 조속한 전면 개방을 주장했다.

이미 일본은 1986년, 중국은 1992년 외국 변호사들에게 문을 열었다. 일본에선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외국법 사무 변호사'라는 명칭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본 변호사를 고용할 수도 있고, 같이 동업할 수도 있다. 자신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국가와 관련된 국제 상사 중재 사건이 일본에서 진행되는 경우 변론을 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외국 변호사의 명칭도 '외국법 자문사'라고 하여 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외국법 자문사의 국내 개업허가 요건도 까다로울 전망이다. 한국 변호사와의 동업도 FTA 발효 후 5년 뒤에야 허용된다.

이는 너무 더디다. 2005년을 기준으로 상하이만 해도 82개 외국 로펌이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에는 아직 단 하나의 외국 로펌도 없다. 갈수록 국제화하는 기업과 시민의 법률생활을 생각할 때 법률서비스시장은 더 신속히 개방되어야 한다. 곧 입법예고될 관련 법률에서 더 전향적으로 검토해서 기업과 시민에게 개방의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제도

이렇게 지나치게 더딘 법률시장 개방과 대조적으로 매우 무모하게 도입되는 것이 '투자자 국가 제소제'다. 이 제도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필자는 무역클레임에 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국제중재를 늘 조언하는데, 바로 이 국제중재에 한국이 회부되는 것이다. 반면 국내 기업에는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권한이 없다. 이 투자자 국가 제소제가 FTA에 포함되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미국인 투자자 보호에 소홀할 경우 한국이 무역 보복 조치를 당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미국투자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미국은 한국 자동차에 부여한 FTA 관세를 철회하는 보복을 적법하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종래 양자간 투자협정(BIT)에 들어있을 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래서 세계무역기구(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아직 투자자 국가 제소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호주도 미국과 FTA를 하면서 이 제도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이 제도는 아직 검증된 국제규범이 아니다. 이 제도를 비판하는 까닭은 기업과 시민에게 끼칠 법적 불안정성 때문이다. 가령 한국 정부가 어떤 부동산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자. 이전 같으면 정책의 적법성 여부는 오로지 한국의 법원이 최종 판단한다. 또 오랫동안 축적된 판례가 있어 정책의 적법 여부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정부 정책 불안정 초래 가능

그러나 투자자 국가 제소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투자자가 이 정책 추진을 이유로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하면 한국의 기존 판례와 사법부는 무용지물이 된다. 왜냐하면 국제중재에서는 FTA 협정문과 국제법에 의해서만 판정을 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한국법에 따른 것이라는 항변은 쓸모가 없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법률환경의 변화인지를 일반 기업과 시민은 당장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으로 글을 맺는다.

한국 법률에 근거해서 추진되는 정부 정책을 전제로 해서 사업계획을 짜고 추진했는데, 그 정책이 언제라도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낯선 3인의 중재인단에 의해 사실상 변경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귀하의 사업체는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능력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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