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10년 뒤 아파트의 덧없음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7.03.30 10:42
글자크기
아파트는 단순히 '집'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 문화 경제 정치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그의 경제적 신분이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어느 지역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그의 정치적 성향이 판단되기도 한다.

아파트는 젊은이에게 꿈과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좌절을 안겨다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젊은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그의 저서 '아파트 공화국'에서 우리의 아파트 문화를 '압축된 산업화의 상징'으로 규정지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아파트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대다수 젊은이들은 압축된 산업화의 수혜자인 동시에 희생자다.

얼마전 모 그룹 소속 건설사의 부사장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10여년전 일본 지사에 근무할 때 '국민소득 수준에 따른 주택양식의 변화'라는 논문에 대한 얘기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미국 등 국토가 엄청나게 넓은 국가 제외)의 경우 1만5000달러 수준이 되면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중심이 되고, 2만달러에 안착하면 그 중심이 아파트에서 타운하우스로 급속히 옮겨 간다는 것이다. 물론 타운하우스로 앞서서 거처를 옮기는 사람은 부유층이다.

3만달러를 돌파하는 시점이 되면 다시 단독주택이 주거문화의 전형으로 올라선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아파트는 서민들이 사는 곳으로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조짐이 아직 작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환율거품에 대한 논란도 있고, 체감경기도 좋지 않지만 1인당 국민소득(GNI)이 작년 1만8372달러로 2만달러에 근접하면서 타운하우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용인 흥덕, 동백지구을 비롯, 파주 교하, 일산 행신 등 인기 택지개발지구 또는 신도시 인근에 타운하우스 건립과 분양이 활발, 타운하우스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들리는 얘기로는 강남 논현동 서초동 청담동 일대에 20가구 미만으로 지어져 개별분양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의 경우 건축설계사가 백지 위에 선을 그리는 순간 수요자들이 현금을 싸들고 올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돈 많은 부자들은 이미 아파트에서 벗어나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장점을 두루 갖춘 타운하우스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조짐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파트 값이 하락하고 있을 때 파주의 헤르만하우스나, 서판교의 르씨트빌모트, 기흥 골드컨트리클럽의 아펠바움 등에 3억∼5억원의 웃돈이 붙어있고 그나마 매수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 타운하우스는 대부분 미분양돼 있다가 근래들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웃돈이 얹어진 것이다. 학군수요가 감소하면서 강남과 목동의 전입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이로인해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는 것도 주거문화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아파트 공화국이 이땅에서 영원히 군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몇년 안에 최고조에 오를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도 결국 쇠잔해지지 않을까.

10년 뒤에 생각해보면 지금 아파트에 연연하는 게 참 부질없는 짓일지 모르겠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