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된 기타리스트를 보내다"

머니투데이 성연광 기자 2007.03.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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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Life]평생을 음악과 함께한 낭만파 故김철수 안硏 대표

"CEO가 된 기타리스트를 보내다"


지난 2일 새벽. 우리시대의 한 기타리스트가 우리곁을 떠나갔다. 보안업계 2세대 CEO 중 대표주자였던 김철수 前안철수연구소 대표가 암 투병 중 별세한 것. 향년 53세. 이제 한창 일할 나이였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국내 IT 및 보안업계의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김철수 대표는 지난 2002년 한국IBM에서 안철수연구소에 COO(최고운영책임자)로 합류한 뒤 회사조직의 선진화 시스템 도입과 글로벌 경영체제의 초석을 닦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더욱이 안철수 의장으로부터 CEO 바통을 이어받은 지난 2005년 3월부터 매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그의 경영능력은 업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신화를 일궈낸 CEO 김철수'. 그런 그를 만든, 그를 항상 따라다녔던 수식어가 바로 '기타리스트'다. 그에게 기타와 음악은 그의 삶 자체였다. 실제 김 대표는 재임시절 경영을 예술로 승화시켜 '예술경영'의 리더십 CEO라는 평가를 받았다. 6개의 전혀 성격이 다른 줄(현)이 뭉쳐 고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기타 연주. 그것은 조직, 시장, 인재 등 여러 경영환경을 조화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경영과도 코드가 맞기 때문 아닐까.
"CEO가 된 기타리스트를 보내다"
그는 CEO 재직 당시 직장인 그룹사운드인 '잭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당시 김 대표의 지론은 각기 악기 연주능력보다 멤버의 조화를 이룰때 최상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김 대표는 평소 밴드 후배들에게 “밴드 음악도 사회 생활과 같아서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며 “잘난 사람 한,두명과 그 들러리들의 모임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멤버들의 조화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항상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그는 병세가 악화돼 CEO직을 내놓은 이후에도 종종 잭밴드 연습장에 나가 기타를 치곤했다. 병마와의 싸움 와중에도 기타에서 손을 뗄 수 없었던 것. 그가 운명을 달리한 뒤 장례식장에서 그의 영정 옆에서 끝까지 그를 지켰던 것도 고인이 직접 만들고 애지중지했던 일렉트릭 기타다. 그가 얼마나 음악과 기타를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마지막 음악인생을 함께 한 잭밴드 멤버들. 옆에서 항상 그를 지켜봤기에 슬픔은 더욱 남달랐다. 그가 운명한 당일 장례식장을 찾은 음악 벗들은 조문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미리 근처 주점에 모여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도 슬픔을 가시기엔 너무나 부족했나 보다. 조문 내내 이들이 흘린 눈물바다가 주위를 안타깝게했다. 그의 장례식장에 잭밴드 멤버들이 보낸 조화에는 'CEO가 되어버린 기타리스트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가슴을 메이게했다.
"CEO가 된 기타리스트를 보내다"
안철수연구소 직원들도 기타리스트 김철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 대표가 안철수연구소 CEO 재직 당시 그의 사장실 CEO 의자옆에는 항상 김대표 자신의 기타와 파란색 간이침대가 있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열정적인 경영을 하면서도 일요일 오후 혼자 사무실에 나와 기타 연주를 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직원들도 아직까지 많다.

실제 그는 직원들을 위해 행사에서 기타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직원들과 '안랩 올스타즈 밴드'를 결성해 2004년 말 직접 공연을 했던 것. 안철수연구소 사보 '보안세상'에 처음 김 대표의 과거 기타리스트 사실이 소개된 이후 직원들로부터 공연을 해달라는 열화에 김 대표는 경영목표 달성시 공연을 하겠다고 밝혔고, 그 약속을 결국 지킨 것. 2005년 말 기자송년회 당시에도 그는 잭밴드 및 안철수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때 기자들은 몰랐다. 그게 대중앞에선 마지막 공연이라는 걸 그는 알았을까.

사실 김 대표는 음악과 평생을 같이했다. 만 4살때 피아노를 배웠다. 이후 10년 이상 피리, 트럼본, 재즈기타 등 각종 악기를 섭렵했고, 중학교 때 처음접한 기타에 심취해 프로 뮤지션의 길로 나섰다. 대학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할 나이에 김철수 대표는 미8군부대 근처 클럽에서 프로밴드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생전에 기자들과 만나 "당시에서 밴드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회라는 세상으로 처음 내디딘 그곳에서 생활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선지 마음만은 더 따뜻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과 음악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그 시절이 너무도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된다"고 회상하곤 했다.
"CEO가 된 기타리스트를 보내다"
그렇게 평생 음악을 사랑하고 일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故 김철수 대표. 그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그가 마지막까지 애정을 불살랐던 안철수연구소 임직원들이 함께 했다. 안철수연구소는 평소 그의 회사에 대한 애정을 기리기위해 벤처업계로는 드물계 회사장으로 장례를 치뤘다.


김 대표의 경영능력을 인정해 그를 믿고 CEO직을 맡겼던 안철수 창업자도 급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달려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안철수 의장은 5일 거행된 영결식장에서 "고인의 회사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잊지말고 뜻을 받들어 세계적인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자"고 복받쳐 말했다.

하늘도 슬퍼서일까. 2007년 3월 눈바람 흩날리던 날. 그는 그렇게 한줌의 재가 돼 우리곁을 떠나갔다. 그렇게 평생 함께했던 기타 하나 둘러맨 채...그러나 그의 음악인생은 이제 다시 시작일지 모른다. 영원의 시간 속에서..하늘 저 어딘가에 그가 생전 좋아했던 '산타나'의 연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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