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대표는 지난 2002년 한국IBM에서 안철수연구소에 COO(최고운영책임자)로 합류한 뒤 회사조직의 선진화 시스템 도입과 글로벌 경영체제의 초석을 닦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더욱이 안철수 의장으로부터 CEO 바통을 이어받은 지난 2005년 3월부터 매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그의 경영능력은 업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병세가 악화돼 CEO직을 내놓은 이후에도 종종 잭밴드 연습장에 나가 기타를 치곤했다. 병마와의 싸움 와중에도 기타에서 손을 뗄 수 없었던 것. 그가 운명을 달리한 뒤 장례식장에서 그의 영정 옆에서 끝까지 그를 지켰던 것도 고인이 직접 만들고 애지중지했던 일렉트릭 기타다. 그가 얼마나 음악과 기타를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그는 직원들을 위해 행사에서 기타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직원들과 '안랩 올스타즈 밴드'를 결성해 2004년 말 직접 공연을 했던 것. 안철수연구소 사보 '보안세상'에 처음 김 대표의 과거 기타리스트 사실이 소개된 이후 직원들로부터 공연을 해달라는 열화에 김 대표는 경영목표 달성시 공연을 하겠다고 밝혔고, 그 약속을 결국 지킨 것. 2005년 말 기자송년회 당시에도 그는 잭밴드 및 안철수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때 기자들은 몰랐다. 그게 대중앞에선 마지막 공연이라는 걸 그는 알았을까.
사실 김 대표는 음악과 평생을 같이했다. 만 4살때 피아노를 배웠다. 이후 10년 이상 피리, 트럼본, 재즈기타 등 각종 악기를 섭렵했고, 중학교 때 처음접한 기타에 심취해 프로 뮤지션의 길로 나섰다. 대학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할 나이에 김철수 대표는 미8군부대 근처 클럽에서 프로밴드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생전에 기자들과 만나 "당시에서 밴드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회라는 세상으로 처음 내디딘 그곳에서 생활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선지 마음만은 더 따뜻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과 음악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그 시절이 너무도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된다"고 회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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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경영능력을 인정해 그를 믿고 CEO직을 맡겼던 안철수 창업자도 급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달려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안철수 의장은 5일 거행된 영결식장에서 "고인의 회사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잊지말고 뜻을 받들어 세계적인 안철수연구소를 만들자"고 복받쳐 말했다.
하늘도 슬퍼서일까. 2007년 3월 눈바람 흩날리던 날. 그는 그렇게 한줌의 재가 돼 우리곁을 떠나갔다. 그렇게 평생 함께했던 기타 하나 둘러맨 채...그러나 그의 음악인생은 이제 다시 시작일지 모른다. 영원의 시간 속에서..하늘 저 어딘가에 그가 생전 좋아했던 '산타나'의 연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