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줄 것도 받을 것도 없다

김영권 정보과학부장 겸 특집기획부장 2006.03.2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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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 모르는 '탐욕의 경제'..값싼 동정도 없이 산다

남에게 빚진 것 없다. 혹시 나에게 받을 게 있는 사람은 나를 욕하기 전에 알려 달라. 나는 알고도 모르는 체 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다.

남에게 받을 것도 없다. 몇몇 사람이 빌린 돈을 갚지 않았지만 이제는 받기를 포기했다. 아깝고 속 쓰리지만 미련을 버렸다.



주는 것 없이, 받는 것도 없이 그렇게 오래 전부터 살아왔다. 돈이야 항상 부족하니 베풀 게 없다. 얼마를 벌어야 부족함을 면해 인심 후하게 쓰면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리의 걸인 쯤은 보고도 못본 척 지나칠 수 있다. 한푼의 돈보다 돈 버는 기술을 가르치는게 더 중요하다고 말은 잘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런 말도 쓰면 근사하다.



요즘에는 봉사활동이나 기부행사를 하는 회사가 많은데 그런 기회라도 있으면 모를까 내가 먼저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일이 너무 바빠 시간도 나눠 줄 수가 없다. 틈틈이 집안 대소사를 챙기기도 벅차다. 고단한 몸을 추수르기 힘드니 몸으로 떼우는 일은 엄두조차 못낸다.

마음도 함부로 열어 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대부분 일때문이다. 때로 술자리를 갖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지만 업무가 바뀌면 그걸로 끝이다. 결국은 '짱구'를 잘 굴려야 손해보지 않는다. '윈윈'을 논하지만 아차하면 당한다.

친구들은 험한 세상을 살고 있어 얼굴 보기 어렵다. 1년에 한두번 정도 만나고 그것도 뜸해지면 멀어진다.


이웃은 없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 식구가 몇인지 정말 모른다. 예전에는 '너무 심한가' 싶어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이젠 무덤덤하다. 그쪽도 그런 식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그냥저냥 스친다. 이웃이 없으니 번거롭게 이웃을 챙길 일도 없다.

세상은 숨막히는 전장이다.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한다. '20대80'이라더니 이젠 '10대90'의 법칙이란다. 패배의 댓가는 결정적이다. 그러나 승자도 안심하지 못한다. 승부는 거듭되고 패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양보는 없다. 승자도 고단하니 결코 행복하지 않다. 팽팽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경쟁력이다. 업무는 과중하다. 세상에 물자가 넘쳐나도 자꾸자꾸 만들어 낸다. 필요를 넘어선 물건을 사고 파느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모두가 승자되고, 함께 잘 사는 그런 길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민중을 논하고 공동체니 연대니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으나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아직도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부릅뜬 눈이 살벌하다.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그들의 적의가 부담스럽다.
 
만족을 모르니 항상 부족하다. 탐욕의 경제다. '어떻게 하면 판을 잘 벌이고 능숙하게 사람을 다뤄 돈을 많이 벌까' 이런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까' 이런 건 별로 고민하진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 누군가의 애석한 사연을 들으면 마음이 짠하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이 난다. 어처구니 없는 사기행각이나 정치쇼에 분노한다. 그걸로 잽싸게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카타르시스 효과를 거둔다.

그것은 값싼 동정보다 더 경제적이다. 더 싸구려다. 아니 돈 한푼 들지 않는 완전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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