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6.03.0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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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세상]트렌드를 열린 자세로 바라봐야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모순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모스키노(Moschino)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오늘날 트렌드를 전공으로 다루는 '학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트렌드는 독자적인 학문이 되기 어렵다.



학문이란 일정한 이론에 따라 지식이 체계화될 수 있어야 하는데, 트렌드는 본질적으로 논리와 동떨어진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은 이론과 체계화를 위해 끊임없이 오류를 내다버린다. 대다수에 적용되는 원칙을 추려내기 위해 소수의 결과는 버려질 수 밖에 없다.



설문조사는 언제나 5000만 국민의 의견을 묻기 위해1000명을 추려낸다. 그리고 그 중 70%답이 일치할 때, 30%의 답은 슬그머니 제외된다.

우리는 뉴스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생각은 이것입니다'라며 굵은 의견 한 두개를 듣게 되지만, 나머지 30%의 대답, 그리고 질문을 받지 않은 4990만 9000명의 대답은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버려진 오류, 그러나 존재하는 오류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은 사회의 밑바닥에 고여 알 수 없는 힘으로 뭉쳐진다. 우리는 이 힘을 통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힘은 분석되지 않았고, 연구된 바 없으며, 모든 원칙들로 부터 제외되어 있기에 애초에 제어할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현대의 모습을 제대로 알려면, 영리하고 아름답고 힘있는 사람들이 경멸하는 지역, 즉, 과학인식론적 관점에서 보면 '저자세'를 취하는 지역들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렌드의 본질은 소외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트렌드는 본질적으로, 논리학적 오류를 그 속성으로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스런 힘에 관심이 있다면, 논리학에서 쫓겨난 오류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행운과 성공의 기회를 보기도 한다. 트렌드는 실제로 부조리와 기회라는 두 가지 속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보험은 하나 들어두시는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회사 분들이 전부 하나씩 가입하셨거든요'

위의 문장은 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오류에 속한다. 보험 가입을 올바르게 주장하려면, 이 보험은 어떤 점이 좋다든지, 다른 보험에 비해 어떤 점이 유리하다든지 하는 타당한 근거들을 제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지금 '여론'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동의하고 있으니 너도 동의해라. 이 오류를 논리학에서는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라 부른다.

그러나 트렌드에 있어 '대중에의 호소'는 오류가 아닌 하나의 동력이 된다. 타인에게 '동조'하려는 욕구야말로 트렌드가 확산되는 결정적 요인이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길을 몰라 헤매일 때, 자연스럽게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이게 된다.

처음 내린 타국의 공항에서 어느 쪽으로 나가야할 지 모른다면 어떻게 할까. 공항의 도면을 펼쳐보거나, 안내데스크를 찾아 질문을 던짐이 타당한 행동이겠지만, 우리의 선택은 그보다 훨씬 쉬운 일을 택한다. 남들 가는 데로 따라가는 것.

동조에 의한 확산이란 트렌드의 본질적 속성이다. 아무것도 확산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제품을 팔 수 없고, 정치가들은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확산이란,개개인의 '판단'의 결과여야지, '동조'의 결과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같은 가격에선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그만큼 '이 제품이 가장 좋다라고 판단내린 개인이 많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과 가장 좋은 제품은 종종 일치하지 않는다. 확산은 개개인의 이성적 판단이 모여서 이뤄지기보다는, '동조'라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 우리는 근거에 의한 판단보다는 주변사람들의 의견에 더욱 쉽게 좌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편리하고, 안심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이 개탄스럽게 느껴지거나, 고쳐나가야 할 세상의 오류라고 느껴진다면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오늘날 개개인의 비이성적 행동과 무모한 확산을 막기 위해 철학은 가치관과 논리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간, 경영학에서는 이같은 개개인의 비이성적 행동과 무모한 확산을 용이하게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마케팅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어떤 학문이 옳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이 모든 뒤죽박죽 자체가 세상이 실재하는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인간이 이성과 감성이 분리된 존재라는 주장은 고작 200년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렇기에 트렌드의 확산은 본질적으로 부조리와 기회를 동시에 담고 있다. 지나친 속물주의나 지나친 도덕주의는 이 시대에서 행복한 패러다임을 만들기 어렵다. 세상은 그렇게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트렌드는 이런 면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누군가 말했듯이 '유행을 무시한다는 것은 유행을 추종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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