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 볼 일 없이 산다

김영권 정보과학부장 겸 특집기획부장 2006.02.0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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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地 水 火 風… "해도 바람도, 비도 눈도 싫다"

언제 아침 해가 뜨고, 언제 저녁 해가 지는지 모르게 하루가 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으니 그 하늘에 해가 어디쯤 떠 있고, 구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턱이 없다.

동트는 새벽 하늘을,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우두커니 바라본 적이 언제인가. 밤에도 달을 찾지 않으니 당연히 달이 떴는지 안떴는지 모르고, 그 달이 보름달인지 반달인지 초승달인지 모른다. 물론 별이 돋았는지, 은하수가 흐르는지 안중에 없다. 그건 그냥 하늘의 일일 뿐 뉴스가 아니다.
 
땅에는 흙이 없다. 인도는 보도블록으로, 차도는 아스팔트로 덮혀 있다. 빈틈이 생기면 시멘트로 틀어 막는다. 땅의 기운은 새어나올 곳이 없다. 요즘에는 운동장도 폴리우레탄을 깔아야 고급이다. 걷고 달리는 것은 기계 위에서 한다. 올림픽을 봐도 흙먼지 날리는 종목은 없다. 어디 남은 흙길이 있으면 빨리 덮어버려야 속이 후련하다. 그래야 자동차가 잘 달릴게 아닌가.
 
해가 나면 자외선이 부담스럽고, 비가 오면 산성비가 걱정된다. 바람 불면 황사가 두렵고, 눈이 오면 교통대란이 겁난다. 빌딩마다 누가 바닥에 빗물을 떨어뜨리는지, 지저분한 발자국을 찍는지 노심초사하니 드나들기도 조심스럽다.
 
계절도 그냥 오고 간다. 1년 내내 사무실의 온도는 비슷하다. 겨울에는 추운 줄 모르고, 여름에는 더운 줄 모른다. 자동차 안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다. 꽃피는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덥다 싶으면 가을이다. 그야말로 별(★) 볼 일 없이 산다.
 
아침이면 목이 탁 막히도록 넥타이를 졸라 메고 출근길에 나선다. 하루 종일 손가락이 제일 바쁘다. 밥 먹고, 신문 보고, 자판 두드리고, 클릭하고, 리모컨 버튼을 조작하느라 손가락은 쉴 틈이 없다. 우리나라 손가락 기술이 세계 최고가 될 만도 하다.



나머지 몸은 별로 움직일 일이 없다. 마음이 바쁜 사람들은 잠시 걷는 것도 성가시다. 그래서 그것마저 줄이고 나면 하루 24시간을 거의 완벽하게 앉거나 누운 자세로 보낼 수 있다. 집에서는 소파에, 사무실에서는 의자에, 출퇴근 길에는 빈좌석에 등을 기댄다.
 
도심의 이런 일상에 지(地)·수(水)·화(火)·풍(風)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학교 교과서에서도 `자연'이 사라졌다. 그것은 탐구하고, 이용하고, 개발해야 할 대상이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군림이요, 수탈이다.

빈 터는 두고 볼 수 없다. 넒은 땅에는 틀림없이 아파트가 들어선다. 맑은 물은 공장에서 만든다. 공기는 매연이다. 한줄기 바람은 공기청정기가 대신한다. 새소리는 멀어졌고, 자동차 소음만 요란하다. 아이들은 떠들면 안되고, 집에서 뛰면 안된다. 그걸 지키면 않으면 어른들이 욕을 먹는다. 강아지도 짖으면 혼난다.
 
세상은 디지털세상이고, 유비쿼터스 시대다. 만물은 유무선 네트워크 상에 존재한다.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그 촘촘한 그물망으로 앞다퉈 들어간다. 애들은 3.2살때부터 인터넷을 한다.



그 애들이 발에 흙은 묻혀 봤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그 바람이 전하는 꽃향기를 맡아 보았을까. 그 애들이 자라 우리처럼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 볼 일 없이 자랐는데, ★ 볼 일 있는 사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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