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잠망경]'헌신짝' 돼버린 3년전 약속

윤미경 기자 2005.12.2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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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보조금 규제 3년만 한다더니..

"단말기 보조금을 `비대칭규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통신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이용자 이익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지난 2002년 11월, 정보통신부가 전기통신사업법에 단말기 보조금 금지를 명문화하는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국회에서 설명했던 내용이다.



당시 정통부는 보조금 금지법 제정을 강력히 반대하는 국회를 이렇게 설득했다. "3년후 보조금을 허용하기 위해서라도 3년 한시법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이용약관으로 보조금 금지규제를 계속하게 되면 규제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단말기 보조금'을 또 다시 연장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3년전 정통부가 약속한대로 한다면 이런 논쟁은 불피요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보조금 논쟁'은 금지법이 효력을 다해가는 그날까지 이어질 판이다.



아마도 정통부는 3년전 일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 사이 정통부 장관이 바뀌고, 소관업무를 담당하는 국장이 바뀌고, 과장도 바뀌었다. 당시 그 약속을 기억하는 국회의원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언론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정통부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곳도 별로 없다. 그러니, 정통부는 3년전 약속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나 보다.

3년전 약속을 기억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 술'을 더 뜨는 느낌이다. 이동전화 '비대칭규제'로 단말기 보조금 금지를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정통부가 '2년이상 장기가입자 보조금 허용'을 2년 한시법으로 만들려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찬성하는 곳은 LG텔레콤이다. 현행 보조금 금지법 연장을 원했던 LG텔레콤은 전면 허용은 결사 반대하고 있다. 전면 허용되면 보조금 경쟁이 촉발돼 자금력이 달리는 후발사업자는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통부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비대칭규제'로 보조금 규제정책을 이어가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사업자들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싶어하지 않고, 소비자들은 보조금을 받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보조금 허용'은 보조금을 의무적으로 주는 게 아니다. 보조금을 줄 것인지 말것인지 그리고 보조금을 얼마나 줄 것인지는 순전히 사업자들이 시장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의 시장논리 아닌가.

이에 비해 '2년이상 장기가입자 보조금 허용'은 모든 게 모호하다. 정통부 장관은 "의무 지급"이라고 언급한데 비해, LG텔레콤은 "의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우대가입자 기준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매달 10만원씩 내는 A고객의 가입기간은 1년 3개월이고, 매달 2만원씩을 내는 B고객의 가입기간은 2년 5개월이라고 치자. 사업자 논리라면 당연히 A가입자에 대한 혜택을 높여야 하지만, 정통부 규제방향대로 한다면 B가입자만 보조금 대상이고 A가입자는 제외다.

따라서 정통부의 보조금 금지법 연장은 '소비자'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소비자 정책'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기업간 담합에 서슬퍼런 칼날을 세우던 공정거래위원회 마저도 슬쩍 외면해버린 '보조금 규제정책'. 이제 이 법안은 지난 23일 규제개혁위원회도 무사히(?) 통과하며, 국회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통부는 또 3년전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면, 설득력있는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왜 2년을 연장하고, 왜 2년 이상 장기가입자여야 하는지 기준이 뚜렷해야 한다. 그런데 정통부는 이유와 명분이 분명치 않다. 당초 3년을 더 연장해야 한다고 했다가 공정위와 타협하면서 2년으로 금새 바꿔버렸다. 정책에 대한 철학부재를 스스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3년전 약속을 기억못하는 정통부가 2년후 다시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2년후 같은 논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조금 정책은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최소한 정책결정자들의 책임감을 확보할 수 있다. 사업자 논리에 소비자들의 권리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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