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겸손하게 주식하자

김정훈 대우증권 연구위원 2005.12.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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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의 증시 따라잡기

연말에 당신은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1월 중에 시장이 상승세로 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건 이미 잘 알려진 1월 효과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1월은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2월 1일에 다시 편지가 도착해 2월에는 시장이 내려갈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 역시 예측이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다시 3월 1일에도 편지가 도착하고 그 편지의 예언 또한 적중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매달 편지를 받게 되고, 그 편지의 예언이 모두 맞아 떨어진다. 7월쯤 되면 당신은 그 익명의 조언자를 완전히 믿게 된다. 그리고 어떤 펀드에 투자해 보겠느냐는 권유 편지도 받는다. 당신은 앞뒤 볼 것 없이 가진 돈을 몽땅 쏟아 붓는다. 그리고 당신은 두 달 후 무일푼이 된다.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역시 그런 수수께끼의 편지를 두 통 받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두번째 편지로 끝이었다. 첫번째 편지의 예측은 맞았지만, 두번째 편지의 예측은 틀렸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것은 사기다. 이 사기 수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화번호부에서 10,000명의 이름을 골라낸다. 그리고 그 중 절반에게는 '상승 장세'라는 편지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하락 장세'라는 편지를 보낸다. 다음 달 초 첫번째 편지의 예측이 적중한 쪽에게 다시 두번째 편지를 쓴다. 절반인 2,500명에게는 '상승 장세', 다른 절반인 2,500명에게는 '하락 장세'를 예측하는 내용으로 보낸다. 이런 식으로 명단이 150명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계속 보낸다. 그리고 150명 가량의 '사기 대상'이 선정된다. 이 사기 수법에 드는 비용이라고는 우표 값 몇 천 달러가 전부이고 그 대가로 수백만 달러를 챙긴다.(이 사례를 읽고 이것을 이용하여 사기 치시는 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능력이라 믿었던 것이 알고 보니 사기였던 것이다.



위의 글은 나심 니콜라스 탈렙(Nassim Nicholas Taleb)이 쓴 Fooled by randomness(`능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라는 책에 나와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하게 주어진 행운 덕분에 혜택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기 성공의 이유를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 덕분으로 돌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우연적인 사건이나 운에 의해 결정되며, 그렇기 때문에 운을 능력이라 착각하지 말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탈렙의 주된 메시지이다.



물론 그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지는 않고 있지만, 행운을 자신의 능력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겸손함을 일깨우게 해 준다.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선수들이 간혹 있다. 워런 버핏이 1회전(한번 사고 파는데)하는데 1년이 걸린다면 이 선수는 하루에 공중 3회전도 더 한다. 하루 매매에서 몇 % 먹고 파는 이 같은 도사들은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은 자기만의 기법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기법을 운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주식 투자해서 돈 잘 번 것이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운의 힘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수익은 더 좋아지거나 덜 깨질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주가 밴드(저항선과 지지선)를 정하고 싶을 때 평균값의 아래와 위 몇 퍼센트에 점을 찍는다. 볼린져 밴드의 경우에는 평균의 아래와 위쪽에 표준편차를 점으로 찍는다. 이론적으로 보면 고점과 저점 범위를 잡아내는데 볼린져 밴드가 보다 의미가 있다.

볼린져 밴드는 20년전 존 볼린져가 만든 테크니컬 지표다. 그는 볼린져 밴드의 상한선에서 주식을 팔아야 하고, 볼린져 밴드의 하한선에서 주식을 사라고 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주가가 변동성 밴드의 고점에 있을 때 과열을 염려해야 하고, 주가가 변동성 밴드 저점에 있을 때 과매도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표를 만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번역서에서는 사고 파는데 집중하고 있고, 일부 트레이더들은 맹목적으로 밴드 하한선에서 사고, 밴드 상한선에서 판다. 물론 시세가 밴드 밖으로 벗어나면 벗어나는 쪽으로 베팅하기도 한다.

과열과 과매도 수준을 참고하는 지표를 볼린져 밴드라고 정했으면 거기에 따라갈 필요가 있다. 남들이 만든 지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적절한 그래프를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오만 보다는 겸손한 태도로 개발자의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겸손한 태도가 쌓이면 나도 모르게 주가 분석의 틀이 잡힐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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