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을 생각부터 하라"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5.08.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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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돈은 버는 것보다 지키는게 중요하다. 돈 한 번 잘못 빌려줬다가, 혹은 보증 잘못 섰다가 '한 푼 두 푼' 쌓아온 재산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숱하게 보게 된다.

더구나 혹 그렇게 돈 떼먹은 사람이 나중에 언제 그런 일 있었냐는 듯 떵떵거리고 잘 사는걸 본다면 속이 뒤집어진다.



우리는 범국민적으로 돈을 떼인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도 한두푼이 아니다.

1997년 11월이후 금융기관이 기업들에 빌려줬다가 떼인 돈을 메우기 위해 들어간 공적자금, 쉽게 말해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피같은' 돈이 167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중에 지난달말까지 되돌려받은 돈은 절반에도 못미치는75조9000억원. 나머지는 아예 떼일 가능성이 높거나 몇년이 지나야 겨우 쥐꼬리만큼 건질수 있을까말까한 돈이다.

워크아웃을 탈피한 하이닉스반도체 등 현대 계열사, ㈜쌍용 등 쌍용 계열사, 대우건설 등 옛 대우그룹 계열사 등...그때 그렇게 "죽이든지, 빚 줄여줘서 살린 뒤 조금이라도 건지든지 알아서하라"며 '배째라'했던 기업들 가운데 기력을 되찾고 있는 사례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이익을 내기 시작한 매력있는 매물로 M&A 시장에 나오고, 이에 따라 주가도 급등한다. 우의제 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워크아웃 조기 종료를 전후해 스톡옵션을 행사, 38억원의 차익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부활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우리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 지금 뽀얗게 새단장한 기업들의 화장 아래에는 피눈물자국이 가려져 있다는 사실은 불과 몇년 사이에 쉽게 잊혀진 것 같다.

회사를 정상화시킨 경영진이나 고통을 감내한 종업원들의 공로 역시 국민들에게 진 빚이 없었더라면 빛을 볼수 없었을 것이다.

IMF사태로 거덜이 난 한 2금융권 회사의 전직 임원 A씨는 워크아웃 기업들 이야기만 나오면 "이제 먹고 살만 해졌으면 빚 갚을 생각들이나 좀 하라"고 울분을 참지 못한다. 주채권은행의 주도 아래 '채권단 75% 이상 동의'로 가결된 워크아웃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떼인 그때를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미 법적으로야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지만 빚이 그렇게 막대한 기업들은 이 사회에 어떻게든 빚갚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게 A씨의 생각이다.

물론 돈 잘 버는게 사회에 대한 제일 큰 보답 내지는 기여 아니냐고 할수도 있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두산회장)은 "기업에게 사회환원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두산 역시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의 지원으로 부도를 딛고 회생한 고려산업개발을 (분식까지 동원해) 헐값에 인수한 바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에 진 신세를 따져보면 어느 기업이나 큰 소리칠 입장은 아닐 것이다.

이달 중순 열린 '통합경영학회 학술대회' 참가 학자들은 '지속가능 경영'을 새로운 화두로 제시했다. 친(親)기업 학자로 꼽히는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혁신경영 창조경영과 함께 사회책임경영을 미래를 위한 기업의 핵심적 활동으로 추가해야 한다"며 이제 더 이상 '돈 버는게 최고'라는 단순논리로는 기업이 오랫동안 지탱하지 못한다는걸 경고했다. 사회로부터 받은 유형 무형의 도움을 되갚아 가는 기업이 결국 장기적으로 발전할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기업들도 이럴진대, 실제로 막대한 빚을 졌던 기업들이 '내가 잘나 이만큼 살게 됐다'고 자만에 빠진다면 빚 떼인 사람들은 입맛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형편이 펴지면 빚부터 갚겠다는 부채의식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빚 떼먹고 잘 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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