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노조가 다시 서려면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업이 구체적으로 뒤따라야 하며, 그 성과를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조 안팎에서도 걱정과 충고가 잇따르고 있다.
같은 당 단병호 의원도 "최근의 노조비리는 노동운동계 내부의 도덕적 긴장감이 떨어진 게 근본 원인"이라며 "간부들의 도덕적 재무장을 위한 소양강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외부감사나 재산공개가 비리 차단 시스템으로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직자들은 일찌감치 재산공개를 시작했는데도 비리가 여전하고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들 역시 분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2002년에도 '개혁특위'를 만들어 감사제도 개선과 노조간부 윤리강령 제정 등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과가 없다. 최근 불거진 비리들을 보면 개혁특위를 뭐하러 만들었느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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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지도부가 적당히 고개를 숙이며 '비리 차단 의지'를 보여주는 선에서 이번에도 사건은 덮여진 채 넘어갈 지 모른다. 두려운 건 그 다음이다. 다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또 한번의 '사죄'와 '재발방지 시스템'으로 봉합할 수 있을까.
노조 비리는 이미 사회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한 번 더 대형 사건이 터지면 그 때는 '외부'의 손을 빌어서라도 노조를 수술해야 한다는 여론의 분노가 노조의 자정선언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강경한 여론이 시키는 대로 정부가 노조의 회계감사를 하고 법과 제도의 도움을 받아 감시체제를 작동한다면 그 때는 사회 전체가 균형감각을 잃게 된다. 공권력의 제도적인 통제를 받는 노조는 이미 노조가 아니다.
노동인구 3명중 2명이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시름에 잠겨있다. 고용관행과 임금구조를 개혁해야 하는데 노조는 없고 정부와 사용자만 있다면 그 불균형의 폐해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양대노총을 합해도 노동조합은 조직률 10%를 갓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비노조원으로 남아있는 압도적 다수가 더 큰 상처를 입게될 가능성이 높다.
노조 비리도 문제지만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노동현안들이 그 보다 훨씬 큰 무게로 남아있으며, 논쟁과 합의의 주체는 여전히 대표성과 자립기반을 갖춘 노동조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조 지도부의 미봉책-비리 재발-타율 개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지도부 비리로 인해 노동운동 자체가 매도 당하거나 해결해야 할 더 큰 노동문제들이 묻혀서는 안된다"며 "정부가 노조를 감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도 "법, 제도를 통한 노조 재정감시 등의 해법을 제시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노조 스스로 자정을 이뤄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결국 대책은 하나 밖에 없다. '외부'가 개입하기 전에 노조 스스로 통증을 참아내며 썩은 부위를 확실하게 도려내는 것이다. "노조가 먼저 비리를 고백하라"는 노회찬 의원의 고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노조가 먼저 비리를 고발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후 전염이나 재발의 가능성이 없음을 사회로부터 확인받기까지 또 다시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건 노조의 위기의식이다. 도덕성 상실을 공격받는데 대한 위기감이 아니라 자칫 '타율개혁'으로 종지부를 찍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비장함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