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5.04.22 15:58
글자크기

[영화속의 성공학]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

편집자주 영화 속 이야기는 물론 현실속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세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온갖 일들이 오롯이 녹아있지요. 이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삶의 모습속에서 참된 삶과 진정한 성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ㅇ…대학 다닐때 순정만화를 꽤나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엔 별로 보질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좋아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작은 나이가 아니다보니 남의 눈도 꽤 신경쓰인다.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교류, 그로 인한 오해와 엇갈림, 그런 갈등들이 주는 안타까움과 해결됐을 때 오는 카타르시스 등등. 순정만화에 녹아있는 그런 것들을 꽤나 즐겼던 것 같다. (이런 커밍아웃이 부담스럽긴 하다. 이렇게 장황설을 늘어놓게 된다)



ㅇ…일과가 대충 끝난 어느 저녁. 기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며 도시의 밤을 밝혀 준다. 지친 몸을 좀 달래야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카페인이나 알콜같은 약물(?)보다도 훨씬 효과좋은 피로회복제다. 특히 듣는 멜로디가 서정적이거나 가수의 목소리가 감미로울 수록 좋다. 몇 곡을 듣다 보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러다 이 노래를 듣고서는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의 삽입곡인 'Take Me Home, Country Roads'. 원래 존 덴버의 노래인데 주인공 소녀가 노래말을 바꿔 부른다.

가창력은 그야말로 어설프다. 하지만 악기가 하나씩 차례차례 들어왔다 빠지고, 나중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편곡이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플룻 간주땐 정말로 멋지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ㅇ…'귀를 기울이면'은 순정만화가 원작이다. 중학생 소녀와 소년의 정말 이쁜 사랑이야기다. 주인공 소녀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당연히 글쓰기도 좋아한다.


주인공 소년은 어린 나이에 이미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차근차근 준비에 나선다.

그런 소년에 소녀는 자극받고,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간다. 소녀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모든 게 불안하다. 그런 그들은 서로에게 따뜻하게 위로 받는다. 어른들도 그런 그들을 이해해주고 격려해준다.

소년의 할아버지는 소녀를 이뻐한다. '장차 보석으로 가공될 원석'라는 말로 용기를 준다. 소녀는 완성된 첫 습작을 할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의 꿈을 인정해주면서도 사려깊은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법은 그 나름대로 힘들단다. 무슨 일이 생겨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으니 말이지."

ㅇ…이 순정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중학생 또래다. 소년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마따나 어떤 보석이 될 지 모르는 좋은 시절이다. 언젠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 십대의 주인공들은 이미 인생의 목표가 나름대로 서있다.

영화를 보면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삽십대인데도 아직까지 갈팡질팡이니 말이다. 글 쓰는 일이 좋긴 하지만, 투철한 직업정신(기자정신)까지 확실히 갖추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에 그저 대책없는 자신감으로만 버틸 뿐이다.

하지만 주인공 소녀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매일매일 살아 볼 참이다. 아침마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라고 중얼거리면서, 또 그런 기대에 설레여 하면서 말이다. 갑부가 못되면 어떻고, 권력을 못 가지면 또 어떤가. 좋아하는 일 즐겁게 하며 살면 되는 거지 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