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부동산 버블이 온다

봉준호 외부기고가 2005.04.19 10:55
글자크기

봉준호의 살 맛 나는 부동산

◆ 정기 예금 금리 3.25%, 평균 물가 상승률 3.3%

이른바 제로 쿠폰(Zero Coupon) 시대이다. 적정 금리보다 실제 금리가 낮을 경우는 당연히 부동산이 상승한다.

정기 예금 금리는 1997년 10% 선을 유지하다가 1998년 상반기에는 IMF의 여파로 18%에 육박했다. 1998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저금리 정책으로 내려 앉은 금리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는 7%선을 유지하다가, 2001년 5%대로 내려 앉았다. 2002년에는 4%를 유지하다가 2003년 중반부터는 3%대로 떨어졌다. 급기야 2004년, 2005년은 거의 Zero Coupon 상태가 되었다.



Zero Coupon은 은행에 넣어두면 넣어둘수록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상황을 이른다. 물가 상승률을 금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이다. 2001년 금리가 5%대로 내려 앉으면서 부동산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정부는 IMF로 인해서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벗어나고자 정신없이 저금리 정책을 써왔다. 저금리 유지를 통해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줌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정 성장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동산 폭등으로 다가왔다. 저금리는 한계 기업의 수명 연장 수단과 구조조정 지연으로 나타났을 뿐, 창업과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고소득층은 부동산 투자로 돌아 이익을 얻고, 저소득층은 아무런 혜택도 얻지 못하는 극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 집값 상승은 금리 인하의 선물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젊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 나오고 있다. 그들은 열심히 살고 싶었다. 그러나, 실물 경기는 너무 안 좋고 그에 따라 하는 일마다 줄줄이 실패했다. 대출을 받고 가게문을 열어도 장사는 대부분 신통치 않았다. 사무실을 열고, 넥타이 메고, 마케팅을 하는 2층 창업도 여의치가 않기는 마찬가지…

그들 중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 갤러리아팰리스부터 파크뷰, 포스코 더샵 스타시티, 시티파크 등 청약 통장 없이 추첨으로 당첨되는 주상 복합 아파트에 밤새 줄 서서 당첨되고, 즉시 전매해서 몇 천에서 1억이라도 벌면, 한 2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약 통장으로 신청해야 하는 아파트들도 경우는 비슷했다.


60세에 정년 퇴직을 하고, 그 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은행에 넣고, 매달 나오는 돈으로 생활을 해나가던 이자 생활자들도 갑자기 1/3 토막 난 수입으로 한 동안 방황하다가 부동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동산 투자는 새벽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머리를 쓰거나 종업원을 다루어야 하는 힘든 일도 아니며, 오직 저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쉬운 일이 아파트를 사 놓는 것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반갑게 화답했다. 금방 2배, 3배가 뛰면서 은행이자 10년치 수익률을 단숨에 가져다 주었다.

“역시 이것밖에 없구나…”

대중들은 이제 확신을 가지고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다. 집은 땅으로, 땅은 빌딩과 상가의 투자로 무차별 확대 되었다.

◆ 부동산 버블이 온다.

정부는 급격히 오르는 부동산 폭등에 깜짝 놀랐다. 각종 대책을 쏟아 내놓는다.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들은 모두 “투기범”으로 몰아 부친다.

투기와 투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1년 이하 투자자는 투기범이고, 1년 이상 투자자는 투자자다. 그래도 부동산이 안 잡히면, 3년 이하 투자자는 투기범이고, 3년 이상 투자자는 투자자다. 집과 땅을 사도, 1개 사면 투자자이고, 2개 이상사면 투기범이다. 1개를 사도, 자주 사면 투기범이고, 가끔 사면 투자자다.

나름대로 이러한 잣대를 만들어 부동산 투자자들을 밀어 붙인다. 항상 발표하는 대책에는 “투기”자를 붙여서 여론 몰이를 한다. 때로는 “긴급”자를 붙이기도 한다. 그래도 안되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돌입”이라고 선전 포고를 한다.

나는 시장을 정확히 읽어서 시장이 원하는 근본 정책을 쓰라고 권유하고 싶다. Zero Coupon 시대에 투자할 곳이 없는 현실, 그리고 불경기, 넘치는 유동 자금,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들에 대한 원천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그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개발이익환수제, 세무조사, 초고층 재건축 불허, 안전 진단에 대한 직권 조사권 발동 등으로 맞서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기에다가 몇 가지 실수도 했다. 언론을 확실히 제어하지 못해서 판교 2천만원 분양가설이 분당권을 달구었고, 잠원동 한신 5차 아파트의 35층 허가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 상승의 빌미를 제공했다. 드디어 강남의 고가 아파트로부터 버블이 시작되고 있다. 타워팰리스 124평형이 55억원이다. 이외에도 50억원 이상의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70평대 이상 아파트도 시시각각 부르는 것이 곧 값이다.

파는 자들의 고민은 “그 돈 받아도 갈 곳이 없다. 양도세로 차익의 40%를 내고 나면 남는게 없다.”이다. 부동산 졸속 정책 중 하나인 1가구 1주택 양도세 부과와 양도세 중과세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타워팰리스 68평형을 22억에 팔아서 동부센트레빌 60평형을 23억에 사서 가려고 해도, 양도세를 6~7억원 내고 나니, 등기 비용, 이사비용 포함 8~9억원이 든다. 바로 옆 비슷한 아파트로 옮기려 해도 나라에서 부동산 억제책으로 만든 법에 의하여, 납세하고 나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금부과액만큼 자기집 호가를 올려 부르거나 기존 주택을 임대하고 한 채 더 산다. 부동산은 저금리 기조가 계속 되는 이상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의의 1가구 1주택자의 발목을 잡아, 1가구 2주택자로 만들어버린 상황이 주택 보급률 100% 시대에 또 100%를 더 지어야 하는 어려운 형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다 스스로가 인정하는 실수요자들이다. 100% 자기 실탄으로 움직인다. Zero Coupon에 투자처를 못 찾고 있는 돈들은 정부 정책을 향해 정면으로 대들고 있다.

재건축의 소형 평수 의무 비율, 조합원 전매 금지, 개발 이익 환수제 시행에도 재건축 아파트는 계속 오른다. 언젠가는 정부가 손들 수 밖에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공급의 확대와 금리 인상 없이 가수요를 차단하겠다는 정책은 너무도 무력해 보인다.

부동산 시장은 회복기와 활황기, 침체 진입기와 침체기의 주기적인 반복과 경기 이론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 동안 부동산은 한 번 큰 장이 지나가면 여러 변동 요인과 정책에 의하여 침체기로 들어섰다. 따라서 부동산은 계단식으로 상승해 왔다.

그러나, 이번 주기는 Zero Coupon으로 인해, 침체 진입기에서 다시 회복기로 접어들려고 한다. 5년에서 10년간의 침체기가 없는 부동산 시장의 변화는 곧 버블로 이어진다. 버블은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고 한탕주의를 만연하게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부동산 버블은 거품 위의 폭탄 돌리기로 이어지다가 정점에서 큰 소리를 내면서 파열한다. 버블의 파열은 부동산 투자자들과 부동산에 대출해준 금융 기관들의 파산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Zero Coupon으로 빚에 대한 경계심이 없고, 오직 부동산 투자만이 방법이라고 믿는 현실, 그것이 바로 부동산 버블의 예고편이고, “잃을 것이 없다”는 심리적 무장 상태가 곧 사고를 칠 것으로 예견되는 개봉박두 일보직전의 상황이다.

◆ 무엇이 부동산 버블의 기준인가?

① 땅 값과 건축비 대비 2배 이상 고평가 되어 있는 부동산이 버블이다. 아파트나 주상복합의 대지가와 건축비를 계산했을 때, 그 제작 비용보다 2배 이상의 시세가 나온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② 도심 생활권 내의 33평형 아파트를 사는데 대졸 중소기업 근로자의 20년치 평균 임금을 모아도 집 한 채를 살 수 없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③ 오를 만큼 올랐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데도 호가가 계속 올라간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그 결과는 지나치게 오른 아파트가 대형 아파트로부터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여 중소형 아파트로 확대된다.

④ 은행이나 금융 기관이 부동산 시세의 60% 이상 대출해 주기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정부 대책이 안 먹혀 금융 기관들이 자율 조정으로 부동산 대출을 자제해야 겠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⑤ 시세 대비 전세가가 30% 미만인 아파트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일단 전세가가 내려가고 그 다음 매매가가 내려간다. 그것이 거꾸로 간다면 버블이 진행되는 것이다.

⑥ 나 자신이 돈을 버는 방법이 오직 부동산 밖에 없다고 느끼는 대중이 많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⑦ 빈 집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집 값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그것이 버블이다.

2005년 봄…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살아야 하는 불안하고 위험한 길… 부동산 버블이 강남권 대형 평수 고가 아파트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