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경영]친절과 책임감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2005.01.0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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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찌감치 복사할 것이 한 장 있어 동네 문구점엘 갔다. 등교시간이라 초등학생들이 몇 명 물건을 사고 있었다.

주인인 중년 아줌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복사 되냐고 물어보자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안 된다고 끊어서 말한다.

"이른 아침부터 웬 복사냐"는 눈치다. 혹시 복사할만한 다른 곳이 있냐고 물어보자 상가 안쪽을 가르치며 저기 가보라고 얘기한다. 상가 안쪽에 비슷한 사이즈의 문방구가 있는데 역시 기분 나쁜 표정의 중년 아저씨가 있다.



복사 되냐고 물어보자 한 두 장이면 가능하다고 얘기하는데 내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찌푸린 얼굴이다. 무리한 상상인 줄은 몰라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나이에 복사나 하고 있다니..." 저렇게 인상을 쓰고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또 저런 사람에게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또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회사의 여성 임원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커리어우먼으로 늘 애를 보살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화제가 그 동안 그녀가 경험한 도우미 아줌마로 갔다. 어떤 도우미가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물어보자 이렇게 얘기한다.



"오랫동안 저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음식 잘 하지, 청소 잘 하지, 한 마디로 살림을 똑소리 나게 했어요. 정말 집에 가서 할게 아무 것도 없었지요. 그러다 사정이 생겨 그만두고 새로 젊은 여자가 한 분 왔어요. 그런데 이 분은 할 줄 아는 게 없는거예요. 밥도 못 하지, 청소도 못 하지.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완전히 전쟁터예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애들이 지금의 여자를 가장 좋아하는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가만히 생각하니 예전 아줌마는 늘 인상을 쓰고 무뚝뚝했어요. 살림은 잘 했지만 친절하지 않았어요. 일하는 나와 비교해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고, 돈 많이 버는 저를 부러워했지요. 반면 새로 온 여자분은 늘 생글생글 웃어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늘 날아갈 것 같은 목소리로 친절하게 행동해요. 애들하고도 얼마나 잘 놀아주는지 몰라요. 그래서 애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살림은 못하지만 이 분과 오랫동안 일할 것 같네요."
 
친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친절하다, 상냥하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성격이 밝다는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뚝뚝하다, 짜증을 잘 낸다는 것은 "열심히 살았어요, 하지만 세상은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는군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세상을 원망할 수 밖에 없어요. 당신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이 싫어서 그렇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친절하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타고나길 무뚝뚝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무뚝뚝한 것은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사람이다.

자기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고 이런 모습이 원하던 모습은 아닌데, 부모를 잘못 만나, 혹은 배우자나 자식 때문에, 전공을 잘못 선택해, 상사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친절함의 근본은 책임감과 자신감이다. 마찬가지로 불친절함, 무뚝뚝함의 원인은 자신감과 책임감의 결여이다.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친절할 수 없다. 그 불만을 엉뚱한 곳에 쏟아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도 망가지고, 주변 사람도 이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 친절은 친절을 낳고 불친절은 불친절을 낳는다. "나의 종교는 매우 간단하다. 나의 종교는 바로 친절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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