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목숨 건 미·일, K반도체가 승리하는 첫단추는?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4.02.2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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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초격차 확보를 위한 민관 반도체 전략 간담회' 에 참석한 인사들. 오른쪽부터 두분째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반도체)부문장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왼쪽 첫번째 뒷모습은 안덕근 산업부 장관./사진=오동희 선임기자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초격차 확보를 위한 민관 반도체 전략 간담회' 에 참석한 인사들. 오른쪽부터 두분째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반도체)부문장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왼쪽 첫번째 뒷모습은 안덕근 산업부 장관./사진=오동희 선임기자


26일 오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 반도체 업계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경청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대전이 시작된 시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일본의 TSMC 합작사나 미국 정부의 인텔 지원 등 미·일이 반도체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와중에 적자에 빠진 삼성전자 반도체나 SK하이닉스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동안 반도체 업계에선 산업정책을 총괄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과거 산업부의 역할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져 개선되는 속도가 더디거나, 현장의 애로를 듣고도 아무 변화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970년대초 국내 반도체 산업 태동기에 '반도체'가 뭔지도 모르고 TV나 가전 등 전자산업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논했었다.



반도체가 생소했던 당시 수입물품 통관시 세관에서는 반도체장비를 한두달 잡아두는 일이 예사였다. 분초를 다투는 산업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관의 문제를 당시 상공부에서라도 해결해주면 좋았겠지만 그럴 상황도 능력도 못됐다.

상공부 공무원들은 한국 최초의 반도체 전공정 공장인 부천의 한국반도체 건설 당시 가장 바쁜 사장(설립자 강기동)을 "정부 청사로 오라! 가라!" 하면서 힘들게 한 적이 있다. 외화 차관에 대한 권한을 쥔 부처이니 순순히 따라야겠지만 공장 건설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강 사장에게는 현장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번은 상공부의 호출에 한국반도체의 담당과장을 보냈고, 상공부는 "정부에서 부르는데 사장이 안오고 밑에 과장을 보냈다"며 치도곤을 냈다. 한국 최초의 반도체 공장 사장이었던 그가 상공부에 밉보여 이후 어려움을 겪은 이유이기도 하다.


강 사장의 생각은 상공부가 궁금해 하는 분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 과장이니 그를 보낸 것이었는데, 상공부는 직급이 낮은 직원을 보내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해 그 후로도 한국반도체 공장 건설에 비협조적이었다고 했다.

'관과 민'의 위상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너무 오래 전 얘기를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관과 민의 서열은 오랜 역사를 갖고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 사례도 적지 않다. 한 기업 CEO는 자신이 맡은 분야의 애로사항을 최고 정책 결정자와 만나 전달했으나, 그 이후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며 허탈해 했다. 또 다른 사례로 반도체 인력 육성과 관련한 정책 입안과정에서 정작 기업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몇년전 반도체산업협회장까지 지낸 한 기업인은 "만약 반도체 인력양성 계획을 짠다고 했다면 최소한 수요기업의 대표인 저에게 문의는 했어야 할텐데 그런 게 전혀 없이 인력육성책이 나왔다"며 "기업현장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정책을 만드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날 안 장관이 경 사장과 곽 사장 외에도 안태혁 원익IPS 사장, 박영우 엑시콘 사장, 이준혁 동진쎄미켐 사장, 정현석 솔브레인 사장,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등 반도체 장비 업체 사장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밝힌 소통의 방법에 크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안 장관이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초격차 확보를 위한 민관 반도체 전략 간담회' 인사말에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겠다"며 "핫라인을 구축해 언제든 소통하겠으니, 아까 드린 명함에 있는 제 휴대폰 번호로 언제든 전화를 달라"고 했다.

또 행사가 끝난 후 안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업계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쓰겠다"며 "각 기업의 영업비밀도 있고 하니 전체 모여서 듣는 것도 있지만 한분한분 찾아가서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라고 한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나아가 안 장관은 이날 처음 만난 CEO들이 전화하기 전에라도 먼저 그들에게 전화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를 물어보는 '찾아가는 행정'을 하면 어떨까 싶다.

과거 50대 초반의 대학교수 출신의 산업부 장관 중에는 자신보다 연륜이 있는 60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인들을 불러 놓고 학생들 가르치듯 훈시했던 사람도 있었다. 기업의 애로 사항을 듣고 개선점을 찾기보다는 '왜 안되는지'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던 인물이다.

세상의 변화는 안되는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데서 나오지 않는다. 안될 것 같은 일에도 힘과 뜻을 모아 함께 헤쳐나갈 때 세상의 변화는 온다. 그것이 한국 반도체가 초격차를 만들어내는 지름길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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