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러시아 대사관앞에서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여한 러시아 출신 예브게니 슈테판씨(53.왼쪽)와 알렉산드라씨(27). /사진=예브게니 슈테판 제공
러시아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리를 추모하는 러시아인들이 서울 중구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였다. 나발리는 시베리아 지역의 한 교도소에서 숨진 것으로 지난 16일(현지시각) 언론에 보도됐으며 러시아 당국은 산책 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만 밝혔을 뿐 현재까지 정확한 사망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은 자국 대사관 앞에서 주기적으로 반전시위를 열고 있다. 평소 많아야 40~50명이 모이는데, 나발리 사망이 전해진 직후인 지난 17일에는 반전 집회 개최 후 가장 많은 60여명이 참여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러시아 대사관앞에서 나발니 추모집회를 연 러시아인들이 중구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집회 참석자 제공
집회에 참여한 미하일로바 아나스타시야씨(28·여)는 "'우리는 무섭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러시아에서는 집회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이 푸틴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이 있다는 걸 볼 수 있게 하려고 집회에 나섰다"고 했다.
블라디미르씨(25 ·남)는 "러시아에 있는 모든 가족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다"며 "가족들과 관계를 깰 수 없어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내가 나발니 추모집회에 나온 것도 가족들은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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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씨(39·남)는 "이번 나발니 추모 집회는 계획된 게 아니라 한명씩 참여를 했다"며 "우리는 나발니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를 마치고 러시아 대사관 앞에 나발니 추모공간을 마렸했다. 이후 대사관 앞에 허가 받지 않고 추모공간을 조성해선 안 된다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의 푸시킨 동상으로 추모공간을 옮겼다.
동상에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적혀 있다. 동상 받침대에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라는 시구가 적힌 아래 나발니의 사진과 조화를 가져다 놨다.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 놓은 참가자도 있었다.
"나발니 죽음은 음모론"…푸틴 옹호하는 러시아인들도국내 체류 중인 러시아인 중 나발니 죽음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 이들도 있다. 타찌아나 프리마코바 러시안 커뮤니티협회 회장은 머니투데이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직 사인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 나발니의 죽음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러시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죽음"이라고 했다.
이어 "나발니는 해외의 도움을 받아 푸틴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을 뿐 애국자가 아니다"라며 "국내 체류 러시아인들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나발니를 추모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러시아인 중 몇명이나 푸틴을 지지하고 또는 푸탄에 반대하면서 나발니를 추모하는지 정확한 비율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푸시킨 동상에 러시아인들이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독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