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침팬지가 힘센 수컷의 '데이트 폭력'을 피하는 방법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4.1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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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아름다움의 진화’…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암컷 침팬지가 힘센 수컷의 '데이트 폭력'을 피하는 방법


호기심 천국이다. 저자는 동물의 진화사가 적자생존에 기초한 자연선택의 결과가 아닌, 자유로운 성(性) 선택으로 이뤄진 젠더 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힘 있는 수컷의 강제교미로 자행되는 적응주의 이론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인간처럼 동물의 교미도 사회적 맥락과 연결돼야 하고, 따라서 성선택은 결코 자연선택의 시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수컷 오리는 암컷의 몸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무려 42cm의 성기를 자랑한다. 암컷의 그것은 구불구불하고 험난해 나아가기 어렵다. 이 부조화는 강제교미를 자행하려는 수컷과 이를 막아보려는 암컷의 치열한 군비경쟁의 결과다.

침팬지 암컷은 강압적인 우두머리 수컷을 피해 자신이 고른 수컷과 밀월여행을 떠난다. 바우어새의 경우도 마찬가지. 수컷이 구애 행동을 위해 무대를 마련해도,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무대에는 암컷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을 피하기 위한 동물들의 성 갈등 양상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설명하기 어렵다.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 수리남과 안데스산맥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류를 관찰했고 이 과정에서 은폐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재해석했다.

인간과 비슷한 침팬지는 암수 몸집 차이가 25~35% 차이가 나지만, 인간은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고작 16%가량 클 뿐이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인간은 진화해왔다. 그것도 ‘여성의 선택’을 통해서 말이다.


양성 간 평등과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옛날부터 이어져 온 범동물적이고 과학적인 현상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학적 페미니즘’의 새로운 근거가 제시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성적 강제가 성행하던 시절에는 ‘아름다움’은 실질적 쓸모의 부재로 의미가 없었다”며 “하지만 동물이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아름다움의 기준과 신체 자체를 진화시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펴냄. 596쪽/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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