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96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이 부럽다"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박준식 기자, 안재용 기자, 정한결 기자, 양성희 기자 2019.04.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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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에코붐 세대](종합)

편집자주 ‘인구재앙’을 막을 희망으로 ‘에코붐 세대’가 떠올랐다. 1990년대 초반 산아제한 완화로 늘어난 신생아들이 이제 결혼 적령기에 도달했다. 수평지향적인 문화에 익숙하고 ‘선진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강하지만, 취업난과 경제 불안으로 좌절을 겪는 세대이기도 하다. 90년대생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할 방법을 온 사회가 나서 찾아야 할 때다.

88만원세대가 부러운 '요즘 애들'
[한국의 미래 에코붐 세대]①마지막으로 인구 많은 2차 에코붐 세대, 고용·출산 대응에 따라 경제 반등 또는 추락

[MT리포트] 96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이 부럽다"


저출산 시대에 청년 인구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단비와 같다. 청년은 출산 잠재력이 큰 세대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취업난과 양극화 등의 문제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인구 반전의 기회를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청년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328만명이었던 25~29세 인구는 2017년(337만명)부터 늘기 시작해 2021년 368만명으로 정점을 찍는다. 1980년대 말 산아제한정책이 풀리면서 출생아가 급증했고, 이같은 추세는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까지 이어졌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생)의 자녀인 2차 에코붐 세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향후 고용과 출산 등 사회·경제가 뒤바뀔 수 있다. 인구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2차 에코붐 세대 당사자들에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경제 환경이 척박한 데다 많은 인구로 세대 내 경쟁까지 치열하기 때문이다.



 26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병무청과 함께하는 2019 대구시 현장채용박람회’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고졸 취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이번 박람회에는 대구·경북의 병역업체 16곳을 포함해 총 20개 구인기업이 참여해 산업기능요원 등 9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사진=뉴스1 26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병무청과 함께하는 2019 대구시 현장채용박람회’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고졸 취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이번 박람회에는 대구·경북의 병역업체 16곳을 포함해 총 20개 구인기업이 참여해 산업기능요원 등 9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사진=뉴스1
'90년대생이 온다' 저자인 임홍택 씨는 2차 에코붐 세대가 처한 현실을 '경력의 뫼비우스 띠'로 표현했다. 경력이 없어 취업에 실패하고 취업을 못 하니 경력을 쌓을 수 없다는 게 2차 에코붐 세대가 처한 현실이란 얘기다. 저성장 시대에 과거보다 좋은 일자리가 줄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어쩌면 2차 에코붐 세대가 마주한 상황은 바로 윗세대인 88만원세대보다 열악하다. 2007년 '88만원세대'라는 책을 내놨던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성장기였지만 지금은 경기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청년 입장에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안정적인 일자리인 공무원이 되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차 에코붐 세대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지만 정교하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현재 청년 고용정책은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면이 큰데 청년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많이 생기도록 재설계돼야 한다"며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안정성을 깔면서 유연성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차 에코붐 세대만의 특성을 잘 활용할 경우 그 자체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차 에코붐 세대는 수평적 문화에 익숙하다. 월급을 많이 지급할테니 참고 버티라는 한국식 노동관리에 반기를 든다.

우석훈 교수는 "새로운 지식을 가진 20~30대가 머리를 쓰게 해야 하는데 한국은 기성세대가 두뇌 역할을 하고 청년에겐 몸 쓰는 일만 시킨다"며 "조직이 적당히 휴식하고 대화·토론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도입하면 신산업을 발굴하거나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수축사회 3대 재앙…성장·고용·출산 무너졌다
[한국의 미래 에코붐 세대] ②태어나보니 '민주주의 선진국', 경쟁 뚫고 취업나오니 '헬조선'…경제성장률 6.5→2.7% 수축했지만 "백년대계 확장재정으로 교육 및 출산, 보육에 퍼부어야"
[MT리포트] 96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이 부럽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누려온 ‘성장 신화’는 한국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전후 세대에게 현실은 고달프고 힘들지만, 노력하면 더 나은 결과가 돌아올 거란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자녀인 에코붐 세대는 미래에 터뜨릴 ‘긁지 않은 복권’이 더는 남아있지만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2010년부터 가시적으로 보이는 통계치가 이들 세대가 가진 사고관과 행동 양태를 고착화한다. 밀레니엄 세대인 이들에겐 태어날 때부터 민주주의와 경제적 여유가 ‘선진국’ 수준으로 주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사회로 나올 시기엔 경기침체와 가열된 줄서기 경쟁이 강화됐다.

일자리 부족은 청년실업률 증가로 나타난다. 스무살에서 20대 마지막까지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직장을 구하고 있어도 얻지 못하는 비율이 2010년 7.7%에서 지난해 말 9.5%로 1.8%포인트 높아졌다. 이십대가 가진 비관이 그야말로 푸념이 아니라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GDP(국가총생산) 기준 6.5%에서 2.7%로 급하강했다. 2007~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2010년 이후 이어진 저성장은 새로운 복합위기를 만들어냈다.

‘저성장’은 국민의 인식에서 긍정성이 사라지게 한다. 사회에서 ‘노력하면 부를 얻는다’는 공식이 사라지고, ‘내것을 뺏기지 않으려면 남 것을 뺏어야 한다’는 제로섬 게임 상념이 만연하게 된다. 이같은 현실은 합계출산율 폭락으로 나타났다. 2010년 1.226명 수준이던 이 출산율은 지난해 결국 1명 이하인 0.98명으로 떨어져 세계 최저라는 오명을 얻었다.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1명도 애를 낳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특히 에코붐 세대라 할 수 있는 25~29세 인구는 여성 1000명당 같은 기간 아이를 4명 밖에 낳지 않았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비관은 취업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등 이른바 ‘3포 세대’로 이어졌다. 30대들의 동생들이라 할 수 있는 에코붐 세대는 그를 넘어 사실상 ‘출산거부 세대’가 된 것이다.

박준식 기자

결혼·출산 '포기' 90년대생, 세번째 메아리 없다
[한국의 미래 에코붐 세대]③2차 에코붐 세대 취업난, 2050년 저출산 이어질수도

[MT리포트] 96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이 부럽다"
2차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를 방치하면 30년 뒤인 2050년엔 '인구재앙'이 현실화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세 번째 '인구 메아리 세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2차 에코붐 세대가 결혼 적령기를 맞았지만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팽배해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20대의 특징인 ‘출산거부’ 문화를 돌려놓지 못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의 현실을 ‘수축사회’로 명명한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저성장 국면에선 입체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을 통한 정부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홍 전 사장은 “인간도 생명체인데, 모든 개체는 서식환경이 나빠지면 그 숫자를 줄이고 위험을 경계한다”며 “국가가 투입할 확장재정이 우선 여성 일자리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와 그들 자녀에게 필요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보육환경 개선에 전면적으로 투자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교육 문제에 있어 전쟁터로 불리는 입시교육 환경을 바꿔야 하고 이들이 경쟁을 펼쳐 얻을 수 있는 일자리에는 유리 같은 투명한 결과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정부가 최근 일자리 예산과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데 집중하지만 임시직이나 하급 근로직을 양산하는 것은 장기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치열한 경쟁 틈바구니를 이겨낸 에코붐 세대에게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했지만 2차 에코붐 세대의 일자리를 늘릴지는 미지수다. 직군과 직급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은퇴를 많이 해서 아래 세대에 룸(여유)이 많이 생길 거라고 하는데 틀린 얘기”라며 “빠져나가는 사람 중에는 대졸 노동시장이 아니라 고졸이 사실 더 많고 (빠져나가는 만큼) 똑같이 아랫 세대가 채우는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용이 늘더라도 가정과 회사일을 원활하게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않으면 출산율은 늘지 않는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좋은 일자리를 확보한 여성은 결혼·출산 속도를 내거나 뒤로 미루는 반대 양상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이런 점에서 일·가정 양립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방균형발전 역시 중요한 과제다. 조영태 교수는 “서울의 삶이 지방보다 훨신 좋기 때문에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하지 않아도 무조건 서울에서 살려는 마음을 바꿔주지 않으면 고용률이 높아질 수 없다”며 “세종시나 부산, 대구, 광주 등을 중심으로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에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서울처럼 살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식 안재용 박경담 기자

사토리 세대·주링허우…일본·중국의 20대는
[한국의 미래 에코붐 세대]④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사토리 세대…'양극화' 중국은 부유한 주링허우와 가난한 핀얼다이로 나뉘어
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 스타벅스 매장. /AFPBBNews=뉴스1중국 수도 베이징의 한 스타벅스 매장. /AFPBBNews=뉴스1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도 자국의 밀레니얼 세대에 별칭을 부여한다. 일본은 사토리(달관) 세대, 중국은 주링허우 세대다. 불황 속에 성장한 사토리 세대가 한국의 에코 붐 세대와 유사한 점이 많은 반면 주링허우 세대는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아간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1980~90년대생)는 199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한 이후 들이닥친 장기불황 속에 성장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 꿈과 목표를 접고 현실과 타협하는 세대로 정의된다. 사토리는 '득도하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이들은 해외여행·돈·출세·결혼·취업 등에 대해 관심이 없어 달관세대로도 불린다. 사토리 세대가 필요이상의 돈을 벌지도, 쓰지도 않기에 전문가들은 일본 소비시장의 위축을 우려해왔다.

일본이 지난 20년 간 침체기를 겪었다면, 중국은 30년 간 급성장을 이뤘다. 중국의 20대인 주링허우 세대(1990년대생)는 한국과 일본의 20대보다는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특히 중국 정부의 '1가구 1자녀' 정책에 따라 외동이 많은 주링허우 세대는 '소황제'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해외 유행에 민감하고 소유욕도 강해 중국의 소비문화를 이끌고 있다. 윗세대들보다 더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에 친숙하다.

그러나 주링허우가 중국의 부유한 20대를 의미한다면, 가난한 20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도 있다. '핀얼다이'는 중국판 '흙수저'로, 가난함을 물려받은 2세대를 의미한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양극화도 심해졌는데 부모의 인맥·지원이 없어 취업 및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청년들이 자조적으로 자신들을 부르는 말이다. 부모의 지원을 받는 '금수저'로는 '푸얼다이'가 사용된다.

정한결 기자

'에코붐 세대'가 바꾼 소비 풍경
[한국의 미래 에코붐 세대] ⑤온라인 전용 브랜드 속속 출시, 나심비 트렌드에 명품·라이프스타일 부상
헤라 모델 블랙핑크 제니/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헤라 모델 블랙핑크 제니/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자신을 꾸미는 일에 적극적인 '에코붐 세대'가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유통업계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변화 키워드는 '온라인', 그리고 '나심비'(만족을 위한 소비)로 요약된다.

자라면서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했던 에코붐 세대는 쇼핑도 온라인으로 한다. 이 때문에 온라인 전용 브랜드가 속출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달 온라인 전용 여성복 브랜드 '오이아우어'를 선보였다. 유통경로가 단순해진 만큼 원피스가 10만~20만원대에 출시되는 등 기존 브랜드보다 합리적인 가격대를 자랑한다.

온라인 전용 브랜드는 의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LF는 지난달 온라인 기반의 액세서리 브랜드 'HSD'를 론칭했다. LF가 1년 반 만에 내놓은 자체 패션 브랜드 역시 온라인이 타깃이었다. 기존 오프라인 브랜드가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재탄생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한섬의 액세서리 브랜드 '덱케'는 최근 백화점 매장을 모두 접고 온라인 사업만 벌이기로 했다.

실제 온라인 전용 상품은 에코붐 세대 소비자에게 통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지난해 결산 개념으로 온라인몰 SSF샵 '베스트 10' 상품을 분석한 결과 빈폴스포츠의 '슈퍼 다운 스탠다드 패딩' 등 온라인 전용 상품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에코붐 세대는 '가성비'(가격 대비 좋은 성능)를 넘어 '나심비'를 중시한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지갑을 여는 소비 심리를 뜻한다. '요가복의 샤넬'로 불리는 애슬레저 브랜드 룰루레몬이 백화점 여성복층에 매장을 낸 것도 나심비 트렌드와 맥이 닿는다. 룰루레몬 레깅스는 12만~18만원대다.

나심비를 추구하는 에코붐 세대는 사무실 책상이나 자취방 등 자신의 공간을 꾸미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다. 이 때문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부상했다. 자라홈, 자주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가로수길 메인 대로에 자리잡을 만큼 유통업계 대세가 됐다.

에코붐 세대는 명품 소비의 주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명품업계도 '에코붐 세대' 잡기에 나섰다. 루이비통은 최근 서울 이태원에 '트위스트백' 팝업매장을 열었다. 핸드백 단일 품목으로 팝업매장을 오픈한 건 처음이다. 루이비통 로고 'LV'를 위트 있게 표현한 '트위스트백'은 에코붐 세대에서 특히 인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에코붐 세대가 소비 주축이 되다보니 패션·뷰티 브랜드의 모델의 나이대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 예로 아모레퍼시픽 헤라는 기존 전지현과 함께 블랙핑크 제니를 모델로 발탁한 바 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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