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작가가 쓴 페미니즘 SF…"약자들의 연대 얘기하고 싶어"

머니투데이 황희정 기자 2019.01.2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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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우수상 황성식 작가…"폭력성 드러내는 현 사회, 온순함 필요해"

페미니즘 SF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받은 황성식 작가. 그는 소설에서 여성과 개가 단순히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라기보다 약자들의 연대로 보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김창현 기자<br>
페미니즘 SF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받은 황성식 작가. 그는 소설에서 여성과 개가 단순히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라기보다 약자들의 연대로 보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김창현 기자


"이 소설은 여성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남성에게 하는 이야기예요. 페미니즘 소설이지만 남성에게 어필하는 목소리가 더 커요. 약자를 동등하게 대하지 않고 기꺼이 돕지 않으면 인류 문명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출판계에선 페미니즘을 다룬 소설이 다수 출간됐다. 대부분 여성 작가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가운데 남성 작가가 쓴 페미니즘 SF(공상과학소설)가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에서 우수상을 차지해 눈길을 끈다.



수상의 주인공인 황성식 작가의 소설 '개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인류 문명이 멸망한 근미래에 한 여자가 '방주'라고 불리는 안전지대를 찾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의도치 않게 여자의 여정에 개가 함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멸망한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강인함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인간에 비해 절대적으로 약한 존재인 개가 이 소설을 끌고 가는 핵심 캐릭터다.

황성식 작가. /사진=김창현 기자황성식 작가. /사진=김창현 기자
그는 소설에서 여성과 개가 단순히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라기보다 약자들의 연대로 보이기를 바랐다. 황 작가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의 인권만을 옹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동물권을 비롯해 심지어 남자들을 포함한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페미니즘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황 작가는 분명히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의 시각에서 쓴 페미니즘 소설이 문학상을 받은 데 대해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털어놨다.

"남성의 폭력성을 강조한 부분은 페미니즘을 옹호하기 위해 썼어요. 그런데 남성 작가인 제가 페미니즘을 전면에 드러내 상을 받은 것이, 주인공인 여성을 이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남성 등장인물처럼 돼버린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요."

왜 하필 여성과 연대를 이루는 동물로 개를 선택했을까. 황 작가는 우연히 들은 개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었다. 2017년 도시괴담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지금의 이야기로 완전히 개작됐다. 그는 "키우는 개마다 같은 이름을 지어주는 남자 얘기를 들은 게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됐다"며 "이후 책 '은여우 길들이기'를 읽은 데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개과(科)인 은여우의 가축화를 다룬 이 책에서 황 작가는 현 사회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이번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황성식 작가는 서로 배려하고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온순함'이 현 사회에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번 소설에 담았다. /사진=김창현 기자'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황성식 작가는 서로 배려하고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온순함'이 현 사회에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번 소설에 담았다. /사진=김창현 기자
"개와 인간이 같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온순함'이더라고요. 단순히 순종적임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온순함'이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온순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개도 알고 있는데 인간은 모르는 것 같아요. '온순함'을 잃어버리고 '폭력성'만 남은 '개 같은 존재'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수상소감의 첫마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할 정도로 글을 써온 지난 9년의 세월 동안 황 작가를 버티게 해준 건 종교의 힘이었다. 황 작가는 10년에 가까운 인고의 시간 끝에 등단이라는 결실이자 작가로서 씨앗이 돼준 이번 소설을 독자들이 이렇게 느껴주길 바랐다.

"남자들은 강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강함이 약점이 될 수도 있어요. 공격성, 강함이 생존방법은 아닌 거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확 뒤집어버리는 재미가 있어요. 페미니스트가 아닌 독자는 기분 나쁠 수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은 통쾌하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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