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가을의 자작나무 숲은 단풍의 나라다. 자작나무 단풍은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햇볕을 듬뿍 받은 주황색 잎들이 나무의 흰색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자작나무 숲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겨울이다. 눈길을 헤치며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하얀색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와락 안기기라도 할 듯 반긴다. 자작나무와 흰 눈은 서로 닮았지만 또 각자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하얀색끼리의 오묘한 조화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밖에도 중간 중간 여러 갈래의 길을 조성해 놓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자작나무코스, 치유코스, 탐험코스, 위험코스, 힐링코스, 하드코스 등으로 분류되는데, 들어가는 길에 설치해 놓은 종합 안내도를 보면서 결정하면 된다. 주차장에서 자작나무 숲까지는 3㎞가 조금 넘고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방문객들이 자작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산허리쯤에서 만나는 쉼터에서 음료수 한 잔으로 땀을 식힌 뒤 조금 더 오르자 자작나무의 흰 자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앞이 금세 흰색의 물결로 가득 찬다. 하얀 나무들이 파란 지붕을 이고 있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아! 이 풍경 앞에서 누군들 감탄사를 아낄 수 있으랴. 말 그대로 나무의 바다다. 청순? 고결? 신비? 뭔가 미흡해 보이는 단어들만 머릿속을 빠르게 스친다. 늘씬한 자태로 서 있는 나신(裸身)들. 세상에 가장 강렬한 색이 흰색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는 138ha에서 총 5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에 자작나무를 심은 것은 1993년이었다.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에 따르면 원래는 경제림 단지로 조성했다고 한다. 즉, 다른 나무보다 단단한 재질의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자작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 일대는 소나무들이 자생하던 천연림이었는데 소나무 재선충이 크게 번지면서 소나무들을 베어내고 자작나무를 심었다. 25년의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중 하나를 만들어내면서, 경제림보다는 관광자원으로 더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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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여기저기 숲속 길을 헤매고 다닌다. 숲은 넓고 길은 여기저기로 뻗어있다. 세월에 따라 이곳의 자작나무들도 많이 굵어져서 직경이 20cm쯤 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하늘을 찌를 듯 키 재기를 한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다. 어디선가 하얗고 파란 요정이 튀어나와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숲의 기운을 몸과 마음에 들인다. 산책을 하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모두 환한 얼굴이다. 미소까지도 흰색과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늦봄의 자작나무 숲도 어느 계절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행복한 소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