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그후-엄마·아빠는 아이를 돕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8.03.17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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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진도]패럴림픽 개회식의 박지훈·은총 부자-이소정양…18일 폐회식 이후로도 공존 계속돼야

【평창=뉴시스】김경목 기자 = 2018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개막일인 9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개회식이 열린 가운데 철인 3종에 도전한 불굴의 아버지 박지훈 씨가 6가지 희소난치병을 지닌 아들 박은총군과 함께 성화를 봉송하고 있다. 2018.03.09.    photo31@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평창=뉴시스】김경목 기자 = 2018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 개막일인 9일 오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개회식이 열린 가운데 철인 3종에 도전한 불굴의 아버지 박지훈 씨가 6가지 희소난치병을 지닌 아들 박은총군과 함께 성화를 봉송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휠체어의 아들은 추운지 코를 훌쩍거렸다. 아버지는 닦아주지 않았다. 추위를 달래려 덮어진 담요를 끌어올려 아들은 코를 닦았다. 지난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림 평창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성화를 봉송한 박지훈씨-은총군 부자 얘기다. 개회식은 3시간 남짓 계속됐지만 부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채 2분여가 되지 않았다. 뇌병변 장애 등 태어날 때부터 복합적인 질병을 안고 태어난 은총군은 올해 15살이 됐다.

스타디움에 입장한 성화를 최종 점화자에게 넘겨주기까지 몇걸음을 떼는 것만 화면에 비쳐진 부자에게는 사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곡절이 있었다. 은총군은 2003년 6가지 불치병을 안고 태어났고 심한 경기와 발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쳤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던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빚을 질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직장도 그만두고 철인3종 경기라는 도전에 나선다. 또 장애인 가정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때가 2010년이었다. 부자를 처음 알게 된건 당시 푸르덴셜생명과 재단의 소원 성취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그때 부자의 소원은 철인 3종 경기 도전에 성공하는 거여서 훈련을 도와줄 선수들을 소개해 줬고 은총군의 희망은 ‘노트북을 갖고 싶다’는 거여서 그 역시 이룰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었다.

처음에는 유모차를 밀면서 뛰고, 휠체어를 매단 채 자전거 페달을 밟고, 은총군이 탄 고무보트를 끌면서 수영을 했다. 아이가 커지면서 유모차는 휠체어가 됐고 튜브 수준이던 보트도 점차 커지고 무거워졌다. 그동안 도전 수준이던 철인3종 경기에서 ‘홍보대사’의 위치에 오를 정도가 됐다.



# 9일 패럴림픽 개회식 스타디움 바닥에 점자블록이 깔렸다. 시각장애를 가진 이소정양의 등장이었다. 점자벽돌을 따라 무대 중앙에 나섰다 패럴림픽 6개 종목을 상징하는 패러보트에 탑승한 이양은 '보이지 않아도 그별은 있네/(중략)/가끔은 부딪치고 넘어지기도 해'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러 큰 공감을 얻었다. '내 마음속 반짝이는'이라는 노래로 이양은 무대의 아이들과 함께 수화 동작으로 춤을 추기도 했다.

개회식이 끝난뒤 한두곳 매체에서는 제작진의 무신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양이 발밑의 감각을 느끼기 힘든 두터운 패딩부츠를 신었고 이양의 노래와 동작 중 화면 속 수화통역자가 사라진 만큼 무용동작으로 그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었다.

 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시각장애인 소녀 이소정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988년 서울패럴림픽 이후 3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이번 패럴림픽은 49개국 570명이 출전, 역대 최대 규모로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2018.3.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시각장애인 소녀 이소정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1988년 서울패럴림픽 이후 3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이번 패럴림픽은 49개국 570명이 출전, 역대 최대 규모로 오는 18일까지 열린다. 2018.3.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몇주 전 서울맹학교과 경복궁역 앞 출구(학교 위치 안내로는 서울맹학교는 경복궁역 출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고 돼 있다)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흰지팡이에 의지해 있는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를 매몰찰 정도로 채근했다. 아이는 중도장애인인지, 아직 지팡이가 익숙하지 않은지 점자블록을 쉽게 느끼지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와 언제나 함께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어머니는 도와주지 않았다. 더듬더듬 출구에 도착했다. 모자에게 놓인 것은 계단이었다. 평생 흰지팡이를 짚어야 할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와 먼 발치서 지켜보는 행인과는 또다를 터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아름다운 동행. 그리고 편견의 벽을 넘어서는 장애인의 힘찬 발걸음은 18일 폐막되는 패럴림픽 이후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맹학교에서 한참 떨어진 지하철역 계단을 아이들은 제대로 내려갈 수 있을까. '구름이 가려도 태양은 빛나네. 우리 가슴속에도 빛나는 꿈이 있다네, 별처럼' 이소정양의 노래 중 가장 큰 박수가 터져나온 대목이었다.
배성민 문화부장배성민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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