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구축하는 시냅스 패턴, 유품을 찾아야 한다

머니투데이 김초엽 2017.10.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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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8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지민이 설명을 기다리며 눈을 깜빡이자, 남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지민도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 마인드는 단순한 데이터의 묶음이 아니다. 마인드 업로딩이 사후에만 가능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직 뇌의 시냅스 패턴이 어떻게 자아를 구축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마인드 업로딩은 뇌의 시냅스 패턴을 직접 고해상도로 스캔하여, 패턴을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스캔 과정에서 원래의 뇌는 손상되므로 업로딩은 뇌사 상태나 사망 선고가 내려진 사람, 그리고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받은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내부의 개별적인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일반적인 데이터와는 다르게 물리적인 뉴런 세포는 근접한 모든 뉴런에 상호 연결이 가능하므로, 이론적으로 인간의 뇌가 포함하는 연결은 수십조 개가 넘는다.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엄청난 기술이 아직도 고작 봉안당을 대체하고 있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그 엄청난 숫자의 시냅스 패턴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시냅스 패턴 중에서도 특별히 생각과 기억, 외부에 대한 반응과 같이 자아를 구성하는 흐름을 나타내는 것들을 통틀어 ‘사고 언어’라고 불렀다. 사고 언어에 관한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연구원은 도표와 그림을 띄우며 지민에게 마인드 기술의 원리에 대해 부가 설명을 했다. 여태까지 마인드를 검색하는 기술이 고유하게 부여된 인덱스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컨대 인간이 쉽게 데이터화 할 수 있는 형태의 글자나 문장, 그림, 영상, 음악과 같은 미디어들은 검색하기가 쉽다. 같은 형태의 입력 신호를 넣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인드 데이터를 직접 검색하기 위해서는, 마인드가 저장된 형식, 즉 시냅스 패턴 자체를 검색해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설령 어떤 시냅스 패턴을 검색할지를 정할 수 있다고 해도, 방대한 마인드의 바다 속에서 한두 가지의 단서를 가지고 특정한 인물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에 하려는 일은 조금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저장된 마인드들을 기반으로, 표준형 인공 뇌 시뮬레이션을 개발했거든요. 그리고 이 인공 뇌에 외부 자극을 기록하면, 시냅스 패턴을 형성할 수 있어요.”


새로 개발한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특정한 상황이나 물건을 마치 마인드 업로딩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화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뉴런 세포들이 상호작용하는 시냅스 패턴을 흉내 낸다. 새로운 검색 기술은 바로 그 패턴 자체를 입력 신호로 이용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그 패턴을 입력했을 때, 가장 강력한 상호작용을 보이는 마인드가 정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돌아가신 분이 이런저런 바깥 활동을 자주 하셨으면 비교적 찾기가 쉽거든요. 개인을 고유하게 특정하는 물건, 상황일수록…. 고인과 많이 연결된 것, 많은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 검색에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뭐가 필요한 건가요?”

“시험 단계에서는 보통 유품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단순히 남긴 물건들은 성공 가능성이 떨어지고요. 사진 같은 것도, 보통 그 장면 자체가 기억에 강렬히 남지는 않는 편이라…. 저희도 아직 내부 테스트 중이라 무어라고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사실 고인을 가장 잘 아시는 송지민 씨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모두 고유하고 개별적이다 보니, 기억과 가장 강력한 상호작용을 보이는 물건들도 모두 다르거든요.”

그가 가져오라는 것은 특정한 텍스트나 이미지와 같은 곧장 데이터화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유품과 같은 것들을 이르는 모양이었다. 고인의 기억이 많이 얽혀 있을수록, 검색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모두가 공산품을 사다 쓰는 시대에, 한 사람을 고유하게 특정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단 말인가? 남자는 테스트 과정에서 성공했던 물건들의 목록을 읊어주었다.

대개는 직접 만든 물건들이나 고인이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물건들이었다. 얼마 전에는 생전에 가죽 공예가 취미였던 사람의 작품을 기반으로 검색했을 때, 검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내에게 선물 받아서 평생 간직했던 시계나, 직접 정성을 들여 쓴 편지 같은 것도 가능성이 있다. 직장에 다녔다면 일하면서 남긴 결과물들도 입력 신호로 시도해볼 만하다고 했다.

지민은 연구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물건 하나 정도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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