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케이스'에 걸릴라…"먹지도, 만나지도 말자" 입조심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김훈남 기자 2016.09.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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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공직·교단·기업 "일단 아무것도 하지말자"… '9.28 휴거'란 우스개도 나와

28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공직자와 교직원, 기업 대외업무 담당자 등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당분간 아예 먹지도 만나지도 말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사진제공=국민권익위원회 28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공직자와 교직원, 기업 대외업무 담당자 등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당분간 아예 먹지도 만나지도 말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사진제공=국민권익위원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공직자와 교직원, 기업 대외업무 담당자 등 관계자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법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해서는 안되는 행위가 구분이 어렵다. 시행 초기에 적발되면 '시범 케이스'가 될 거라는 우려까지 겹쳐 아예 먹지도 만나지도 않겠다는 분위기다.



세종청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국장급 공무원 김모씨는 27일 기자에게 정책 관련 설명을 하고 말을 끝마치며 "잘 좀 써주세요"라고 했다가 이내 당황했다. 30여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업무 관계자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이 입에 붙어서 툭 튀어나온 말이다. 김씨는 "오늘이 28일 아니라 다행이네요. 취소취소. 앞으로 말 조심해야겠다"고 말했다.

상당수 공무원들은 업무 관계자들과 저녁 모임을 아예 취소했다. 사실상 한 달을 '안식월'로 보낼 계획이다. 과장급 공무원 A씨는 "국정감사 기간이라 국회에 가야 하지만 아예 식사약속을 잡지 않았다"면서 "일단 한 달은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여파'는 대학가와 교수 사회, 교단도 얼어 붙게 만들었다. 서울 소재 K대학교 교수는 며칠 전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만나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이 교수는 "취업 관련 문의 등을 할 때 김영란법에 저촉되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학생들이 서운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모 사립중학교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 박모씨도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부모들에게 당분간 만나지도 말자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말했다.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겠다는 취지다.


주요 기업들은 사실상 대부분 대외관계가 '올 스톱'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대관·대언론 업무 등 대면접촉 업무를 중단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점심 약속 등을 진행하지만 저녁 약속이나 주말 골프 약속 등은 아예 없앴다.

국내 대표 그룹 고위관계자는 "골프는 더 이상 회사에서 경비 처리가 안된다"며 "설사 더치페이를 한다고 해도 의심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천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요그룹 고위관계자는 "평소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9월28일 이후부터는 전혀 없다"며 "법 적용이 모호해서 일단 아무도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더치페이법'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게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얘기다.

한 대형 로펌의 대외업무 담당 변호사는 "법 적용대상자들이 대부분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들이라 매일매일 업무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치페이할 돈도 없고, 각자 돈을 내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이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사람을 애초에 만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실무담당자들 사이에서는 9월28일이 '휴거일'(한순간에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 종교적 말세를 의미)이라는 우스개도 돌고 있다. 그만큼 기존 인간 관계가 위축되고 각종 만남이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심지어 김영란법 위반을 직접 수사해야 하는 경찰조차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애매한 건 역시 직무관련성이다.

서울 시내 한 일선 경찰서장은 "판례 형성이 안 돼 있다"며 "뇌물죄 판례는 일부 있지만 그것도 직무관련성이 아닌 대가성에 초점을 둔 부분이라서 어디까지를 직무관련성으로 봐야 할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서 팀장급 간부는 "'게임비 내기' 당구 한게임을 치더라도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향응 접대에 해당 될 수 있다"며 "아무도 명쾌하게 답을 줄 수가 없어 다들 '내가 판례형성의 대상이 되면 안된다'고 그저 몸 사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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