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MIT 금융천재들이 주식으로 망한 사연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6.09.25 08:00
글자크기

[행동재무학]<155>18년전 LTCM 몰락…똑똑한 사람이 왜 주식에 실패할까?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지금으로부터 18년전인 1998년 9월23일은 미국 금융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 Term Capital Management, LTCM)가 망한 날이다.

이 헤지펀드는 탄생부터가 남달랐다. 우선 이름부터가 무척 촌스러웠다. 보통 헤지펀드는 세련돼 보이기 위해 그리스이름이나 거목이름, 요새명, 색깔과 지형이름 등을 붙인다. 예를 들어 서버러스(Cerberus)라든가, 세쿼이어(Sequoia), 시타들(Citadel), 블랙스톤(Blackstone) 등이다.



그러나 LTCM은 이런 유행을 완전 무시하고 아주 길고 지루한 이름을 붙였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그리고 헤지펀드는 대개 금융과 증시의 중심인 뉴욕의 월스트리트(적어도 보스턴)에 위치하게 마련인데 LTCM은 생뚱맞게 뉴욕에서 제법 떨어진 코네티컷주 그린위치에 자리잡았다.



이보다 더 특이했던 건 전혀 정통적(正統的)이지 않은 구성원과 완전 새로운 투자전략이었다.

LTCM의 구성원은 오랜 기간 월가에서 관록을 쌓은 증권맨들이 아니고 일단의 금융전공 박사들과 수학 및 컴퓨터 전문가들이었다. 즉 외인부대였다.

총 16명의 헤지펀드 파트너 가운데 5명은 하버드와 스탠포드대학에서 재무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거나 전직 교수 출신이었고, 7명은 MIT와 시카고대학에서 재무학과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금융박사들이었다. 이 가운데 두 명은 3년 뒤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만큼 학계의 거장이었다.


또한 당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FRB의장의 차기 후임으로 강력히 거론되던 FRB부의장도 파트너로 참여했다.

LTCM의 투자전략은 수학모델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컨버전스 트레이딩’(convergence trading)이라 불리는 무위험 차익거래(arbitrage)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퀀트나 알고리즘 같은 개념이 많이 익숙해져 있지만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이러한 투자방식은 매우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한마디로 LTCM은 월가의 정통적인 증권맨이 아닌 수학모델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금융천재들이 모여서 혁신적인 투자기법으로 고수익을 추구했던 헤지펀드였다.

LTCM의 설립을 주도한 이는 당대 최고의 미국 채권 딜러이자 투자은행 살로몬브라더스(Salomon Brothers)의 부회장이었던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였다.

그는 살로몬에서 차익거래를 추구하는 채권팀을 이끌었는데, 살로몬에서 같이 일하던 몇몇 채권 딜러들이 LTCM에 합류했다.

통상 헤지펀드는 2-20%(매년 자산의 2%와 이익의 20%를 운용수수료 및 성과보수로 차감)의 수수료 체계를 갖는데, LTCM은 이보다 높은 2-25%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LTCM을 금융의 ‘드림팀’이라 열광하며 서로 투자하겠다고 줄을 섰다.

월가도 LTCM에 주목해 상당한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고 자기자본의 10배가 넘는 대출도 기꺼이 승인했다.

LTCM의 금융천재들은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LTCM은 설립 첫해 28%(수수료 차감전)의 수익률을 거뒀고, 그 이듬해 59%, 그리고 3년째는 57%라는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LTCM은 당초 연 30%의 목표수익률을 잡았는데 이미 2년 만에 이를 초과 달성했다.

설립 이후 1996년말까지 LTCM은 250%의 누적수익률을 달성, 고작 60% 오르는 데 그친 S&P500에 비해 4배가 넘는 초과수익을 거뒀다.

사람들은 LTCM의 금융천재들을 두고 보통의 위험한 금융상품을 ‘황금’으로 변모시키는 '금융 연금술사'라 부르며 환호했다.

그러나 LTCM의 연금술의 마법은 3년으로 끝이었다.

4년째인 1997년 S&P500은 33%나 올랐는데 LTCM의 수익률은 그 절반에 그쳤다.

그리고 1997년 후반에 터진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와 1998년 러시아 디폴트 사태로 치명상을 입고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1998년 9월23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주도하에 무려 16개의 금융기관들로부터 구제금융(bail-out)을 지원받고 LTCM은 완전히 침몰했다.

이후 LTCM은 노벨상 수상자 2명에 MIT 박사 6명 등 금융천재들이 수두룩한데도 주식투자에 실패했다며 두구두고 세간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금융천재들은 왜 주식투자에 실패했을까? 그저 운이 나빴을까?

LTCM의 수학과 금융박사들은 자신들을 망하게 하는 사태가 일어날 확률을 내부적으로 계산해 보았는데 그 확률이 '10 시그마'(표준편차의 단위) 였다. 이는 지구 역사상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매우 희박한 사건을 의미한다. 즉 자신들이 실패할 확률은 지구가 망할 확률 만큼이나 낮다고 여겼다.

LTCM의 금융천재들은 이러한 계산을 믿고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들이 망할 확률이 거의 제로라는데 누가 대비를 하겠는가?

이는 마치 한국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서 지진대비책을 전혀 세우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희박한 일이 일어나게 되면 한순간에 모두 망해버리게 된다.

수학모델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투자를 할 때마다 매번 망할(=예상과 달리 반대로 움직일) 확률까지 계산할 정도였지만, 자신들의 계산이 스스로의 발등을 찍을 줄이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LTCM의 차익거래는 거래 당 이윤이 적게 남는 투자전략이었다. 시장가격의 일시적인 미묘한 불일치를 이용한 것이라 이윤이 많이 남지 않았다. 따라서 투자수익을 늘리기 위해선 대량의 거래를 일으켜야 했다. 즉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이었다.

결국 거래규모가 관건인데, 자기자본으로만 거래하기 보단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를 높일수록 투자수익은 비례해서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LTCM의 차입비율은 자기자본 대비 28배에 달했다.

그러나 2008년 시장가격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자 천문학적인 레버리지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LTCM을 한순간에 몰락시키게 만들었다. 금융천재들이 레버리지의 위험을 간과했던 것이다.

또한 LTCM의 투자전략은 증권맨들의 감각적인 직감(hunch)에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수학모델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따라할 수 있었다.

LTCM의 유명세가 올라가고 차익거래 투자전략이 널리 알려지면서 다른 헤지펀드들도 저마다 그 전략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LTCM의 차익거래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됐다. 이것도 LTCM 금융천재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LTCM 구성원들은 모두 '헛똑똑이들'이었다. 그들은 정교한 수학모델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고안해낼 정도로 천재들이었지만 자신들이 만든 수학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한 탓에 그 모델이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대해선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순간에 몰락하고 만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