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씨는 2년 전 아내와 이혼했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는 ‘돌싱남’(돌아온 싱글남)이다. 아내와의 사이에 열 살 난 아들과 여덟 살짜리 딸이 있지만 친권·양육권 모두 아내가 가지고 있어 자식들과는 연락 없이 지내는 상황이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최근 자녀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손주들도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판결했다. 손주들의 나이는 모두 10세 이하였지만 대법원은 그들도 상속후순위자여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민우씨의 사례처럼 돌아가신 부모가 남긴 빚이 재산보다 많거나 같을 경우, 상속포기와 상속한정승인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몰라 고민하는 상속인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민법은 제1000조에서 상속인의 순위를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혈족으로 정하고 있다. 배우자의 경우 직계비속 및 존속과는 같은 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이 두 상속인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엔 단독상속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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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포기와 상속한정승인은 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하면 된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모두 재산을 넘어서는 빚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나, 상속포기를 택할 경우 상속분은 다음 순위자에게 넘어가게 되고 순위가 점점 내려가다보면 엉뚱하게 사촌들이 빚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상속한정승인은 남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장 우선순위의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하고나면 후순위 상속인들은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택하는 편이 좋을 지는 무엇에 따라 판단하면 될까.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상속인에 해당되는 모든 친족과 연락이 가능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다면 상속포기를 택하는 편이 깔끔하고, 최우선 상속인 선에서 빚과 재산을 정리하고 끝내는 게 나은 경우라면 상속한정승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어차피 두 가지 경우 모두 재산을 넘어서는 빚에 대해선 금전적으로 부담해야 할 책임이 없기 때문에 가족관계 등 상황에 따라 택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상속포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부인 권윤자씨와 장남 대균씨의 경우다. 지난 2월 대구가정법원은 이들의 상속포기 신청을 받아들였다. 정부가 지금까지 동결한 유 전 회장의 재산은 1281억원인데 재산을 전액 환수한다고 하더라도 세월호 비용 약 5500억원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의 상속포기로 후순위 상속인에게 결정권이 넘어갔지만 해외도피 중인 차남 혁기씨와 장녀 섬나씨의 의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