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시장도 반했다는 청계천다리 밑 커피숍에 숨은 사연은

머니투데이 김지민 기자 2015.02.2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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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숙자들이 운영하는 커피숍 '별일인家(가)' 기획한 이노션멘토링코스 최우수팀

↑청계천 광교에 위치한 별일인家 카페 앞에서 바리스타들과 이노션멘토링코스 참가자들이 커피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청계천 광교에 위치한 별일인家 카페 앞에서 바리스타들과 이노션멘토링코스 참가자들이 커피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거 참 큰일이여. 손님이 좀 와줘야 하는데 말이지…."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청계천 광교 밑에 두 팔을 힘껏 벌린 너비 정도 되는 콘테이너박스 안에서 유명 커피체인점 바리스타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능숙해 보이는 솜씨로 커피를 내리던 아저씨의 한숨 소리는 꽤 깊었다. '그래도 일을 새로 시작하시니 예전보다 좋지 않으시냐'는 질문에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장사가 좀 잘 돼야 할텐데…."

'별일인家(가)'라는 문패를 단 작은 이 커피숍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아저씨는 한 달 전까지만해도 이렇다 할 직업이 없이 살아가던 사람 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길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던 아저씨는 이제 장사가 안 되는 가게를 걱정하는 생활인으로 돌아왔다. 아저씨의 변신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자산가나 자선단체의 거창한 기부가 아니었다. 16명의 청년과 이들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게 도와준 착한 기업들이었다.



청계천 다리 밑에 별일인家 카페가 생겨난 것은 이달 초다. '다 지나면 별일 아니야'라는 위안의 메시지를 담은 이름이다. 이 카페의 출발은 작년 7월이다. 이노션의 광고재능기부 사회공헌프로그램 이노션멘토링코스에서 사회적 기업 두손컴퍼니와 4명의 대학생이 기획한 프로젝트 별일인家가 최고의 아이디어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이후 이노션은 실제 2000만원이라는 후원금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켰다.

대학생들의 멘토로 참여했던 심현택 이노션 마케팅솔루션팀 차장은 "노숙자를 도와야 한다는 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부밖에 없다는 인식을 좀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숙자분들을 위한 힐링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실제 메뉴판에는 '괜찮아메리카노’, ‘힘내라떼’, ‘해볼카푸치노’ 등 힐링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뉴들이 그득하다.



↑이재형(건국대학교 시각광고디자인학과 재학 중)씨, 심현택(이노션 마케팅솔루션팀 차장)씨, 권오성(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재학 중)씨. (왼쪽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이재형(건국대학교 시각광고디자인학과 재학 중)씨, 심현택(이노션 마케팅솔루션팀 차장)씨, 권오성(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재학 중)씨. (왼쪽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하고많은 공간 중에서 왜 카페를 구상하게 됐을까. 이번 기획에 참여했던 이재형(건국대학교 시각광고디자인학과 재학 중)씨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숙자에 대한 이미지는 무기력함 그 자체인 것 같은데 노숙자분들을 직접 만나 보니 자활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카페는 노숙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실제 고정관념도 많이 깨졌다고 고백한다. 노숙자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빅이슈'라는 잡지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권오성(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과 재학 중)씨도 그랬다. "카페를 기획하면서 노숙자분들과 얘기할 시간이 많았어요. 어떤 분은 택시기사를 시작하겠다고 하고 어떤 분은 빨리 성공해서 가족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별일인家에서 바리스타 하고 계시는 아저씨는 월급을 받아 빠진 이를 할 생각에 들떠 계세요. 자활에 대한 의지가 이렇게 많은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분들이 포기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요."

건강한 정신을 가진 대학생들, 이들과 기꺼이 함께한 사회적 기업, 이들의 꿈을 실현시켜준 광고회사가 만든 합작품의 위력은 서울시도 움직이게 할 만큼 강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 나가도 손색이 없는 기획"이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싱크(SYNC)'라는 아이디어 경연대회에서 또 한 번 최우수상도 거머쥐었다. 서울시 후원으로 다음 달쯤엔 시청 앞에 별일인家 2호점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팀에 비해 유난히 일의 진행속도가 느려 걱정이 많았던 이 팀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진정성이었다. "진정성이 단단히 받쳐주고 있는 한 이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멘토는 같이 힘을 합해준 멘티들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

"팀원 중 한 명이 카카오톡 프로필에 '결국 해낸다'라고 써놓은 것을 본 순간 확신이 들더라고요. 요놈들이 끝까지 해 내겠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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