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큰 교회 목사님들, 우리 같이 세금 내요

머니투데이 이승형 사회부장 2015.01.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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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70대 어르신은 한때 서울 변두리 교회의 장로였다. 30년 전 개종한 이후 부인과 함께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던 신심이 깊은 분이었다. 인생사 힘들 때면 성경과 기도에 의지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였다. 장로이다 보니 교회 안팎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담임 목사의 말을 늘 따랐다.

[광화문]큰 교회 목사님들, 우리 같이 세금 내요


그런데 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교회를 뚝 ‘끊었다’. 이유를 묻기도 뭣해서 다른 지인들을 통해 알아 봤더니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교회 살림을 맡게 되면서 회계 장부를 살피다보니 교회 돈이 마치 목사 개인 돈처럼 쓰이는 걸 알게 됐다. 장로는 수차례 “이러면 안 된다”고 읍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목사 편에 있던 신도들이 장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고, 끝내 장로는 교회를 떠나야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그는 ‘그래도 좀 참지 그랬냐’는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걸 두고만 봤겠냐”고 했다.



사실 이 70대 장로의 사연은 주변에서 이따금씩 들을 만큼 전형적이다. 특히 큰 교회일수록 돈과 관련된 잡음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데 때로는 큰 사건으로 비화돼 기사화되기도 한다.

청빈과 무욕이라는 종교의 미덕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일까. 교회와 목사들의 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 크다. 여기에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정치적인 발언이나 목사직 세습, 강남의 호화로운 교회당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각이 더해지면서 날이 갈수록 교인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종교인에 대한 신뢰도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한 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평화에 기여하기 보다는 갈등만 유발한다고 보는 국민이 10명중 5명이었다. 며칠 전 국세청이 내놓은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명단을 봐도 그렇다. 전체 102곳 가운데 91%가 종교단체였다. 좋은 데 쓰라고 준 기부금을 투명하게 써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종교인의 말을 과연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

요즘 연말정산에 따른 세금 논란이 한창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화에 나섰지만 월급쟁이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한 느낌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그 분노는 더 커진다고 한다. ‘유리지갑’ 소리를 듣는 월급쟁이들이 ‘과세 형평’에 주목하는 이유다. “나는 내는데 쟤는 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또다시 미뤘다. 내년이나 돼서야 종교인들이 버는 돈에 대해 세금을 매기겠다는 건데 이 말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내년에 총선이 있기 때문이다.


‘표’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종교인들은 극히 일부다. 종교 행위로 돈을 많이 버는 성직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미 소득세를 내고 있는 카톨릭계, 과세에 찬성하는 불교계, 자진 납세하는 일부 개신교계를 제외하면 남은 건 일부 보수 개신교계 종사자들의 반발뿐이다. 그럼에도 이 몇 안 되는 표를 의식해 과세를 유예한다는 정치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래 갖고서야 정부가 원하는 ‘복지 없는 증세’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실제 우리 국민들의 70%는 복지를 위해 세금 올리는 일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부 지출의 구조조정과 빈틈없는 과세”다. 걷을 건 확실하게 걷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라는 말이다. 표보다 중요한 건 조세 형평과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걸 의원님들도, 목사님들도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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