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는 모든 기업들이 배워야 할 가치다. 한국 시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비단 한국 소비자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브랜드의 신뢰도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바라본다. 향후 어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을 다시 판매하더라도 과거의 일들이 잔존 효과로 남는다. 그런데 '탈 한국' '탈 모바일'을 지향하는 엔씨소프트에게는 아직 이런 학습이 부족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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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발표 전날까지 '신제품' 판매━
엔트리브는 11년 동안 적자를 이어오며 수차례 인력 구조조정까지 단행했으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엔씨는 엔트리브 정리 배경에 대해 "미래 도약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인 정리에 따라 트릭스터M과 프로야구H2, 프로야구H3의 서비스 종료 역시 공지됐다.
이 같은 법인 정리 및 게임 서비스 종료 결정이 하루 아침에 이뤄졌을 리 없다. 치열한 내부 논의를 거친 뒤 발표 일정을 잡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여기서 게이머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이 있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트릭스터M은 서비스 종료 공지 하루 전인 1월 3일까지 신규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당연하게도 확률형 유료아이템, 이른바 '뽑기 상품'이라고 하는 것들도 대거 포함됐다. 이 밖에도 서버간 이동이 가능한 월드이전 티켓 등도 새로이 판매를 시작했다. 프로야구H3 역시 럭키팩을 1월 3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신규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 게임이 별안간 서비스를 접을 것이라 여기는 게이머들은 거의 없다. 이에 각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한탕' 내지 '소비자 기만'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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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이미 개봉한 아이템은 어림 없다━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660만원을 주고 1월 3일에 트릭스터M 캐릭터를 구매한 유저의 사연도 널리 알려졌다. 이는 당연히구제받을 수 없다. 개인 간 계정 거래는 게임약관 위배이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와 트릭스터M 약관 및 게임이용규칙 등은 게임 내 캐릭터와 아이템 등이 게임사에 귀속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게이머들은 "서버 종료 전까지 3일 천하" "잠깐 동안은 거지들의 왕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신하 없는 왕이 무슨 소용이냐"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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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도 안되는 '폐지' 게임 유저들…지켜보는 수많은 눈들━
트릭스터M의 서비스 종료와 방식에 놀란 건 다른 엔씨소프트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도 마찬가지다. 나날이 줄어드는 MMORPG 유저들 때문에 고민인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시리즈 게이머들이 "이러다 우리 게임도 벼락치기로 종료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망해가는 게임을 정리하는 데도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데, 엔씨소프트가 이를 간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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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의 26년보다 강렬한 박병무의 1달━
박 대표는 김앤장과 여러 운용사를 거친 '재무·관리통'인 만큼, 숫자로 보이는 성과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게임이 좋아 리니지를 만들고 1997년부터 엔씨를 이끌었던 개발자 체질의 김택진 대표와는 '결'이 다르다. 박병무가 시작한 엔씨발(發) 구조조정 신호탄이 트릭스터M과 프로야구H3, 프로야구H2로 해석된다.
게이머들은 다음 구조조정 대상을 기다리며 떨고 있다. 다만 서비스 종료 직전까지 천연덕스럽게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행보가 계속된다면 게이머들이 다음 대상을 예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떨고 있는 건 게이머들만이 아니다. 이번 엔트리브 구조조정으로 70여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듯, 또 다른 엔씨소프트 및 자회사 직원들도 함께 떨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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