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 아니다...여기선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3.05.30 09:09

[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

'고객이 왕'이라는 말은 기업에서는 금과옥조(金科玉條)다. 모든 서비스 및 제품 판매기업들은 '고객'을 사업가치의 중심에 둔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서만큼은 고객은 왕이 아니어야 할 때가 많다. 안전을 위해 고객에게 엄격하게 대해야 할 때가 있다.

최근 아시아나 항공의 비상문 열림 사고에서도 알 수 있다. 어떤 고객이 승객들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때'에 고객은 왕이 아니어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왜 항공기 탑승 과정에서 피의자가 비상구 좌석에서 앉지 못하도록 걸러지지 않았느냐'다. 항공사 직원들이 신이 아닌 이상 탑승객의 행동이나 말투로 위험 인물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왕으로 대접받으려는 고객의 항의에 몸사리며 안전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그 좌석에 앉는 고객은 탑승 전 간단한 질의응답을 통해 불안해보이거나 위기상황에 대응할 능력이 없어 보이면 발빠르게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겉모습만 보는 형식적 인터뷰가 되서는 안된다. 고객이 불편해 하더라도 세심히 질문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왕'이라며 불만을 터트리는 고객은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외국 항공사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다. 기내식을 승객 앞에 집어던지는 듯하는 외국항공사를 경험해보면 대한민국 항공사들의 높은 친절도를 실감한다. 회사도 친절을 강조하다보니 항공사 직원들은 고객의 항의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해 이런 문화를 없애야 한다.

기자는 지난해 호주 국내선(브리즈번발→시드니행 버진오스트레일리아항공)을 타는 과정에서 갑자기 구매했던 좌석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항공기의 비상구 쪽 좌석은 상대적으로 앞 공간이 넓고 편해 추가 요금을 받고 판매한다. 그래서 비상구 앞 좌석을 온라인으로 예약했었다.

탑승 직전 마지막 개찰구에서 노련해보이는 항공사 직원이 기자에게 몇마디를 묻고 반응을 보더니 예약한 자리의 항공권을 가져가 취소하고, 비행기 맨 뒷좌석을 배정했다.

처음엔 동양인을 차별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뒤늦게 그의 조치가 정당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가 원어민처럼 자신과 원활한 의사 소통이 안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탑승 줄이 길게 늘어선 상황에서 그의 조치는 항의할 겨를도 없이 일방적이었고 신속했다. 비상구 좌석의 특성상 긴박한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대화와 조치가 가능한 건장한 남성에게 그 자리를 배정하는 게 원칙이고 그것을 실행한 것이다.


특정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이뤄져야 하는 조치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공항에서 이런 일로 항공사 직원과 고객들 사이에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면적의 77배 가량인 호주에서 비행기는 자동차만큼 흔한 교통수단이다. 호주에서 30분에서 1시간 연착은 다반사이고, 공항 바닥은 이들에겐 휴식공간이다.

우리나라처럼 비행기 이착륙이 늦어지면 항공사 창구로 달려가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지도 않는다. 연착이 됐다고 비행기에서 농성을 벌이며 내리기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비행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상황으로 여기고 조용히 매뉴얼에 따라 대응한다.

'일찍 출발하거나, 제 때 도착하는 것'보다 안전한 운항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왕이 아니라, '고객의 안전이 왕'이라는 자세다.

이번 사고에서 피의자를 제압(당사자는 제압이 아니라 구조로 인식)한 빨간 바지의 사나이(이윤준씨)는 한 인터뷰에서 피의자가 자꾸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두리번거렸다고 말했다.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는 얘기다. 그랬다면 그보다 앞서 탑승과정에서 브리즈번공항의 그 직원처럼 과감하게 걸려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이 필요했다.

항공기의 목적은 우리를 원하는 장소로 빠르고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또 항공기 비상구 좌석의 목적은 비상시 안전한 탈출을 위한 공간이다. 그 좌석의 판매를 중단하는 것은 합목적성에 위배된다. 이번 사고대책은 그 자리에 비상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앉히도록 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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