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의 역습은 탄소중립이라는 레짐(Regime)에 대한 반작용이다. 레짐은 권력을 동반한 체제를 뜻한다. 권력은 재원의 분배, 규율을 통한 강제성으로 유지된다. 탄소중립으로 향한 여정을 위해 화석연료는 타파해야 할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 구 체제)인 셈이다. 인류는 화석연료에 '기후위기 주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순차적으로 돈줄까지 끊었다. 석탄 관련 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탄광개발은 멈췄고 석탄발전소들도 하나 둘씩 퇴출됐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화석연료로부터 드디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었다.
결국 환상일 뿐이었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일상이 제 모습을 찾아가면서 에너지 수요가 다시 급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으로 향하던 천연가스관이 잠기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공급 위기가 발생했다. 수요와 공급 모두 문제가 생긴 탓에 가격이 폭등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매주 발표하는 주요 광물가격 동향에 따르면 6월넷째주 유연탄 주간 평균 가격은 톤당 390.76달러였다. 이는 전주보다 47.18달러(13.7%) 오른 수치다. 지난해 평균가격인 127.14달러의 3배가 넘고, 2년 전(61.58달러)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뛰었다. 북반구가 본격적인 여름철에 들어선 만큼 발전 수요 증가로 유연탄 가격은 더욱 뛸 것이다.
대안으로 여겨졌던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특유의 간헐성 문제로 기저전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탄소중립에 앞장섰던 재생에너지 왕국 독일이 다시 석탄발전기를 켜는 이유다. 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 여름 폭염으로 전력예비율이 떨어진다면 퇴역한 석탄화력발전기를 다시 켤 예정이다. 무조건 석탄발전을 막을 수도 없다. 여전히 국내 발전량의 40%는 석탄화력에 쏠려있다. 저개발국의 경우 원자력이나 재생에너지보다 석탄의 가성비가 월등하다. 차라리 석탄발전 관련 탄소중립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이산화탄소 저감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암모니아 혼소, 이산화탄소 포집(CSS)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석유나 LNG도 마찬가지다. 외면이 정답이 아니다.
아직은 화석연료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다. 아무리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늘더라도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짧은 기간 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필요하다면 화석연료도 유의미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은 낙인부터 지워야 한다. 당분간 함께 가야 할 에너지원으로 대우를 해줘야 한다. 화석연료를 무조건 '악당' 취급하다간 또다시 카운터 펀치를 맞을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 공정한 전환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뭐든지 과하면 덜함만 못하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