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공정성과 상호 존중이 유지되면 남북 정상회담 등 관계 개선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을 아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종전선언'을 비롯해 '4차 남북정상회담'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물밑에서 대응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6일 김 부부장의 연이은 담화에 대해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북한의 반응에 예단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거론한 뒤, 대남·대외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부부장이 연일 담화를 내놓으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김 부부장은 지난 25일 담화를 통해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만이 비로소 북남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종전선언'과 '남북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등 관계 개선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 담화에선 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장기간 지속돼 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며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김 부부장은 24일 담화를 통해 한미 간 군비경쟁에 열을 올리며 북한을 적대시하고 있는 불공평한 이중잣대를 우선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이런 선결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앉아 의의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며 북남관계, 조선반도의 전도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내걸었다.
청와대는 김 부부장이 연이틀 유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담화를 내놓은 것을 두고 일단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해석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중기준'과 '적대적 언동' 철회 등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의도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가 김 부부장의 메시지에 대해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통일부를 통해 입장을 내도록 한 것도 이같은 신중론이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통일부는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종전선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밝힌데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논의를 위해서는 남북 간 원활하고 안정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남북 통신선이 신속하게 복원돼야 한다"며 "정부는 남북 통신선의 조속한 복원과 함께 당국 간 대화가 개최돼 한반도 정세가 안정된 가운데 여러 현안들을 협의,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신중론을 유지하면서도 정부의 통신선 복원 요구에 대한 북한의 화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남북한의 신뢰 조치 첫 단계로 평가되는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계산이다. 북한은 지난 7월 1년1개월 만에 통신선을 복원했지만 8월 한미 연합훈련을 계기로 다시 2주 만에 차단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신중한 태도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면서도 "남북 간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는 첫 번째가 통신선의 응답이다. 통선선이 끊어진 게 아니라 연결이 돼 있는데 응답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쉬운 행동이고, 상징적으로 북한도 의지를 강하게,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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