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은 국익이다. EU(유럽연합)와 맺은 FTA(자유무역협정) 조항 중 하나인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을 지키지 않는다면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입지를 키우기 어렵다는 논리다.
반면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을 그대로 도입한다면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된다고 맞선다. 해고자의 노조 활동 허용 등이 노사관계를 뒤흔든다는 판단이다. ILO 핵심협약이 국회 비준을 받든 받지 않든 우리 경제가 입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21일 고용노동부는 서울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관련 노사정 토론회를 개최했다. ILO 핵심협약과 연계된 노동관계법을 정기국회 내 처리하기 위한 의견수렴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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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ILO 협약, 곤혹스럽다…코로나19 시기에 부적절"━
경영계는 국회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관련 노동관계법을 통과시키면 경제는 가라앉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특히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 규정 삭제 등이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고 본다.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라 정당하게 해고당한 사람, 퇴직자, 시민단체 회원, 상급단체 활동가 등 기업과 무관한 사람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런 노조원이 늘수록 더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는 대신 정치·사회 투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 규정 삭제는 노조 활동가에 활동비만 더 얹어주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급여 지금 금지 규정을 없애면 노조가 근로시간면제 총량을 노조 전임자의 활동시간으로 산정해 근로시간면제시간 추가 확대 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근로일수 손실도 불가피해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은 노사관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시기에 기업이 노사관계 분야 중 가장 곤혹스럽고 부담을 느끼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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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분쟁 치르는 EU, 조직적 대응 나서━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도 경영계와 마찬가지로 경제다. 현재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두고 EU와 무역분쟁 중이다. 2011년 EU와 체결한 FTA에 담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을 한국이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EU 측 문제제기에 따라서다.
EU는 상품, 서비스 뿐 아니라 국제노동기준 같은 가치도 넓은 의미의 교역 대상으로 보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한국에 요구해왔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다고 현재까지 성사된 EU와의 무역이 영향을 받는 건 아니다. 정부가 우려하는 건 앞으로 EU와 교역 확대가 제한될 수 있는 점이다.
EU는 노동 후진국에 관세 혜택을 주지 않는 등 무역장벽을 쌓고 있다. 베트남, 멕시코 등이 EU와 FTA를 맺으면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 것도 한국으로선 부담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EU가 최근 수석통상감찰관직을 신설했는데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이라며 "EU는 과거 한국에서 국제노동기준 진전이 없다면 무역 관계 심화를 제고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이 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가 사회·경제적 파급력이 큰 만큼 비준을 추진하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노사정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노동법 현실은 국제기준과 상당한 거리가 있어 그 격차를 완전히 메우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점진적, 단계적으로 법을 개정하고 EU와의 무역분쟁 등을 고려해 추가 개정을 위한 계획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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