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코로나19(COVID-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댄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극심한 내부 정파 갈등을 보인 민주노총의 내홍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23일 오전 8시부터 12시간 동안 노사정 합의 추인 여부를 두고 1311명의 대의원이 표결에 참여한 결과 반대 805표, 찬성 499표, 무효 7표로 합의문 추인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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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만의 완전체 노사정 합의, 폐기 위기━
이에 따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고용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노사정이 도출해낸 사회적 대타협은 폐기 위기에 몰렸다.
노사정 합의 부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민주노총 3대 정파 중 강경파인 현장파가 노사정 합의를 거부하고 다른 정파인 중앙파 역시 동조해서다. 이들은 노동계가 애초 요구한 해고 금지 등이 합의문에 담기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반면 정부와의 교섭을 강조하는 국민파는 노사정 합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3월 노사정 대화를 먼저 제안했던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민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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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합의, 반쪽짜리 되나━
노사정 협의체는 지난 5월 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가 참여한 가운데 닻을 올렸다. 노사정은 약 40일 동안 협의를 거쳐 지난 1일 최종 합의문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합의문 발표는 무위로 돌아갔다. 민주노총 강경파가 발표 현장에 가지 못하도록 김 위원장을 감금했기 때문이다. 이후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노사정 합의 추인 여부를 두고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직권으로 대의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하고 부결 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민주노총이 빠지게 되면서 노사정 합의가 반쪽짜리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민주노총이 없더라도 노사정 합의 자체는 효력을 낼 수 있다. 민주노총이 도장을 꼭 찍어야 효력이 생기는 '법적 합의'가 아닌 '선의의 약속'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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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격랑 속으로…새 노총 출현?━
하지만 민주노총을 상급 단체로 둔 노조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사정 합의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한국노총보다 조합원 수가 많은 제 1노총이다.
노동운동도 격랑 속에 휩싸일 전망이다. 고질적인 민주노총 정파 갈등은 노사정 합의를 두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국민파와 비타협 노선을 걷는 강경파 간 대립은 어느 때보다 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표결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민주노총 내 군림하는 정파가 있다"며 강경파를 겨냥했다.
김 위원장은 조만간 사퇴 의사를 밝힐 전망이다. 이어지는 다음 위원장 선거에서 정파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민주노총의 내홍의 수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3대 정파가 조직 해산 등 각자 다른 길을 택할 경우 한국 노동운동은 새로운 길에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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