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산파'가 본 전국민고용보험 "틀 깨지 못하면…"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 2020.05.20 05:00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사진제공=유길상 명예교수

전국민고용보험이 성공하려면 1차 안전망인 고용보험, 2차 안전망인 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제도) 사이에 특수고용직(특고), 자영업자 등을 위한 새로운 안전망을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보험료 중 절반은 사업주가 부담하는 기존 틀과 달리 정부, 사업주, 기존 가입자가 분담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68·사진)는 18일 서울 약수동 인근에서 진행된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은 특고 등 사업주-직원 관계가 애매한 취업자를 어떻게 볼지가 핵심이다. 기존 고용보험에 편입시키려는 접근방식으론 성공할 수 없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실업부조에 못 끼는 사각지대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원들이 130주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택배노동자 진짜사장 규탄대회'를 열고 교섭거부하는 진짜사장 CJ대한통운과 우정사업본부 규탄, 특수고용노동자 차별철폐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규탄대회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일반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택배차량 300대와 유튜브 생방송을 활용한 드라이브 인 집회로 진행됐다.2020.5.1/뉴스1

유 교수는 고용보험의 산파로 불린다. 1982년 경제기획원 근무 시절 선진국에서 실시 중인 실업보험에 실업 예방, 직업훈련 등을 더한 고용보험 개념을 만들었다. 이후 1995년 고용보험 도입 및 제도 확장 과정에서 중추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화한 전국민 고용보험의 초점은 고용보험 4대 사업 중 실업급여에 집중돼 있다. 코로나19(COVID-19)로 일터를 잃었으나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 중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약 1000만명이다.

유 교수는 실업급여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선 고용보험, 국민취업지원제도 두 축으로 구성된 일자리 안전망을 깨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1.5차 안전망이 필요하단 얘기다. 고용보험은 특정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저소득 구직자를 위한 제도인데 특고, 자영업자는 어디에도 낄 수 없다.


"사업주, 특고를직원으로 인정하면 다 무너져"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근정회의실에서 열린 '고용안전망 확대를 위한 예술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앞서 정부는 내년까지 특수고용 종사자와 예술인 등도 고용보험을 적용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2020.5.14/뉴스1

만약 특고를 기존 고용보험 체계에 넣으려면 사업주가 특정돼야 한다. 이럴 경우 특고 보험료 중 절반을 내야 하는 사업주 반발이 불가피하다. 또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고를 노동자로 인정할지 여부도 쟁점이다. 당장 보험업계는 노동3권 보장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며 특고 직종인 보험설계사의 고용보험 가입을 꺼리고 있다.


유 교수는 "사업주로선 특고와 고용 관계라고 인정하는 순간 다 무너지니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고용보험 틀을 그대로 가져갈 경우 대립만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고, 자영업자만의 특수성을 빨리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험료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사회연대기금이다. 그는 "전통적인 사회보험과 공적부조 사이에서 연대 정신에 입각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현실적"이라며 "사업주가 부담하는 절반의 보험료를 기존 가입자, 정부 등 사회 전체가 분담해야 사회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 사업주·기존 가입자·정부가 분담해야"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실업급여설명회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 정부가 실직자에게 주는 실업급여 지급액이 지난달 '역대 최대치'인 9933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1조원에 바짝 다가섰다. 이로써 실업급여 지급액은 3개월 연속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 고용 충격이 전 산업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용노동부가 11일 펴낸 '2020년 4월 고용행정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구직급여 지급액은 9933억원으로, 작년 동월(7382억원) 대비 2551억원(34.6%) 급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3월 세운 역대 최고 기록(8982억원)을 한 달 만에 또 넘어선 것이다. 2020.5.12/뉴스1

유 교수는 고용보험 4대 사업 중 실업급여를 제외한 다른 사업의 전 국민 확대가 더 시급하다고 했다. 나머지 사업인 고용안정사업, 직업능력개발사업, 모성보호사업은 실업급여 사업과 달리 사업주가 모두 재원을 부담한다.

유 교수는 "특고, 자영업자 등은 생계 때문에 직업 훈련, 직업상담, 진로지도 등을 받고 싶어도 못받는데 스스로 고기 잡는 법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며 "피보험자가 아닌 사람을 왜 지원하냐는 주장도 있어 재원을 사업주가 전담하는 방식에서 일반 재정과 절반씩 내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금복지에 의존하지 않을 정도로 예방적 성격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용보험 확대가 노동시장 개혁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근로시간·임금 유연화 등을 통해 노동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하고 실직했을 때 실업급여로 넘어올 수 있어야 한다"며 "노동시장 개혁, 고용보험 확대는 한 세트로 놓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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