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한 마디로 ‘단백질로 둘러싸인 핵산’이다. 핵산의 종류에 따라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로 나뉘는데, 그중에서도 RNA 바이러스들은 유난히 말썽을 피우는 악동들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RNA를 유전체로 이용하는 RNA 바이러스 일종이다. RNA 바이러스는 증식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자주 일으킨다. 치료제 내성이 잘 생기고, 백신도 종종 무용지물이 된다. 게다가 돌연변이를 거쳐 숙주를 바꿀 수 있으므로 동물의 바이러스라도 종간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넘어 올 수 있다.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 이외에도 악명을 떨친 RNA 바이러스는 아주 많다. 20세기 초에 수천만 명을 죽이고 아직도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매년 백만 명 가까이 사망자를 내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원인 바이러스인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50%가 넘는 가공할 치사율을 보이는 에볼라바이러스, 브라질 올림픽의 훼방꾼 지카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보통 RNA는 불안정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물질이 몇 달 만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을까?
필자가 이끄는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고자 숙주(원숭이)세포에서 증식한 바이러스의 유전체와 전사체를 분석하여 고해상도 유전지 지도를 완성했으며, 최근 국제학술지 셀(Cell)에 논문을 게재했다(Kim et al., 2020. The Architecture of SARS-CoV-2 Transcriptome).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번 ‘코로나19 과학리포트’에서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유전체인 RNA가 어떻게 복제되고 증폭되는지, 그리고 어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치료제 개발을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할지도 논의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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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설계자, gRNA(유전체 RNA)━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gRNA는 약 3만 개의 염기가 일렬로 이어져 있다. 인간 RNA의 염기가 평균 3000개이고, HIV의 RNA가 약 1만 개의 염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gRNA는 특이할 정도로 큰 RNA다.
바이러스는 입자 표면의 스파이크단백질(S protein)을 이용해 세포 표면의 수용체 ACE2와 결한한 뒤,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일단 침투에 성공하면 바이러스의 껍질을 이루는 지질막과 단백질들이 떨어져 나가는데, 단백질 껍질에서 풀려난 gRNA는 이때부터 아주 바빠진다.
gRNA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을 복제해 줄 효소를 생산하는 것이다(Sola et al., 2015, Ann. Rev. Virol). 효소 생산을 위해서는 숙주 세포의 단백질 생산 공장인 리보솜이 활용된다. 바이러스 gRNA의 앞쪽 3분의 2정도에 ORF1이라고 불리는 긴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가 만드는 엄청나게 긴 단백질에는 단백질을 자르는 효소 기능을 갖춘 부분이 있어(단백질 분해효소 또는 단백질 가위 라고 부른다) 스스로를 16개의 조각으로 절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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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복제 일꾼들, 비구조단백질(NSP)━
비구조단백질 중 하나인 nsp12는 RNA중합효소(RdRP·RNA-dependent RNA Polymerase)로서 기능을 갖는다(Snijder et al., Advances in Virus Research, 2016). RNA중합효소는 복제 기계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RNA를 대량으로 복제하고 전사체(유전자가 단백질을 생산할 때 활용하는 매개 물질)를 생산한다. RNA중합효소는 단일 가닥인 gRNA를 주물로 활용하여 그 반대 가닥을 만든다. RNA 가닥을 구분하기 위해 gRNA를 양성 가닥(positive-sense RNA), 그 반대쪽을 음성 가닥(negative-sense RNA)이라 부른다. 음성 가닥 RNA는 다시 주물이 되어 양성 가닥을 대량 생산하는데 사용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단 한 개의 gRNA가 세포에 들어가도 수만 개의 자손 gRNA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RNA중합효소를 억제한다면 바이러스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현재 임상시험 중인 치료 후보물질 중 이 치료 전략을 사용하는 물질이 많다. 렘데비시르(remdesivir)는 에볼라바이러스 RNA중합효소 저해제로 개발됐으며, 아비간(Avigan, 성분명은 Favipiravir)은 A형 인플루엔자 RNA중합효소를 저해한다. 시험관 내에서는 아비간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고 밝혀졌지만, 아직 임상 치료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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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돌연변이, 불리하거나 유리하거나━
이러한 돌연변이들은 대부분 바이러스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드물게는 오히려 감염성을 높이거나 종간 장벽(가령, 천산갑에서 인간으로)을 넘을 수 있게 만들어 바이러스의 생존력과 전파력을 높이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간의 유행 중에 나타나는 변이들이 더 전파력이 강한 변종바이러스를 만들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유행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변종들이 더 치사율이 높다는 가설도 있으나, 충분한 분석에 기반한 주장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바이러스의 변이 때문에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효과가 기대보다 적을 가능성은 있다. 게다가 수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서는 새로운 변종바이러스의 출현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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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바이러스의 외장·구조 완성하는 하위유전체 RNA(sgRNA)━
우리 연구단은 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신종코로나바이러스-2가 숙주 세포 안에서 생산한 모든 RNA를 찾아내고, 최소 9종류의 sgRNA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Kim et al., 2020). 기존에 10종류의 sgRNA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중 9종만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한 것이다. 구조단백질인 뉴클리오캡시드단백질(N), 스파이크단백질(S), 막단백질(M), 외피단백질(E)을 만드는 sgRNA들과 악세서리단백질(ORF3a, ORF6, ORF7a, ORF7b, ORF8)을 만드는 sgRNA들이 이에 해당한다.
N sgRNA는 N 단백질 이외에도 ORF9b라는 단백질도 만들 수 있다. 이중 스파이크단백질을 수용성 재조합단백질로 만들어 바이러스가 세포에 들어가는 과정을 방해하려는 치료 전략도 최근에 제시되었다. 스파이크단백질 뿐 아니라 다른 바이러스 단백질들도 잠재적으로 치료제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아래 표에 바이러스 단백질의 기능을 정리했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하기 때문에, 기존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에 기반하여 추정한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9개의 sgRNA 외에도 기존에는 모르던 sgRNA 수십여 종을 새로 찾았고, 일부 RNA에는 특이한 화학적 표식(변형)이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새로 발견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특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들이 바이러스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짐작할 수는 있다. 바이러스 RNA 복제에 쓰이거나, 숙주세포의 면역작용을 피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추가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의 숨어있는 약점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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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종식을 위해서는 꾸준한 기초연구 필요━
물론 인류의 방어 기술도 만만치는 않다.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전 세계 많은 과학자들이 뛰고 있다. 하지만 조급한 기대는 접어 두어야 한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건 보통 수년이 걸리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인류는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모르는 적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인류가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적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아킬레스 건’을 공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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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적게나마 우리 연구단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어 보자는 의견이 연구단 내에서 모아졌다. 바이러스 샘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에 연구재단 노정혜 이사장과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께서 도와주셨다. 2월말에 샘플을 받아 실험을 시작할 때는 이미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환자가 늘고 있었다. 모든 실험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진행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첫 실험은 금요일 저녁 7시에 시작됐다. 필자는 실험을 맡은 김동완 연구원(제1저자)이 긴장된 표정으로 바이러스 RNA를 추출하는 것을 지켜보며 실험을 도와주었다. 그 후 모든 팀원이 주말도 잊고 실험과 분석에 매진해서 3월 중순에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셀(Cell)도 신속하게 동료심사와 수정과정을 마쳐주어서 4월 초에 논문이 발표되었다.
보통은 수개월 이상이 걸릴 일을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수년에 걸쳐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구단이 최신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장비를 갖추고 우수한 과학자를 미리 합류시켰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8년 가까이 장기적으로 IBS 연구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통부에서 지원해온 것이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감염병 사태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탄탄한 기초과학 위에서 언제나 준비된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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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Sola et al., Annu. Rev. Virol., 2015. 2:265-88.
Fehr et al., Methods Mol. Biol., 2015. 1282:1-23.
출처=글 |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편집 | IBS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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