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직권남용?" 모호한 해석에 공무원들 떤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20.02.19 05:00

[MT리포트-직권남용 대법 판결, 그 후]③
14년째 이어진 직권남용 모호성 논란, 입법으로 해결 봐야

편집자주 | 직권남용죄 적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재판들이 잇따르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적폐'로 몰렸던 고위공직자들들이 잇따라 무죄판결을 받고, 한편에선 여전히 모호한 판단 기준이 새로운 정치 수사, 정치 재판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기로 직권남용죄를 둘러싼 쟁점들을 정리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56·사법연수원 17기)의 재판개입 행위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이 논란이다. "위헌적 행위이지만 범죄는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불씨였다. 법률에 따라 당연한 결론에 이른 것이라는 의견과 판사들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난 사이 공방이 뜨겁다.

논란의 원인은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의 모호성이다. 직권남용죄는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공식을 따른다. 검찰은 이 공식이 임 부장판사 사건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판사에게 판결문 내용 일부를 고쳐쓰라고 지시하고, 약식사건 정식재판 회부를 취소하게 한 것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사법행정권에 기댄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직권에 '재판관여'는 포함돼있지 않으므로 직권남용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검찰은 "직권이 남용된 결과를 남용된 직권 그 자체와 혼동한 판결"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고위 공무원들 수사 위험 부르는 직권의 모호성


'직권'의 기준이 무엇이길래 이런 논쟁이 붙었을까? 대법원은 법령에 적힌 권한은 물론, "명문이 없는 경우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해당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되면 그것도 직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권한에 대한 명문이 없는 경우'는 예를 들자면 상급자로부터 위임, 명령을 받아 일시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경우 등을 뜻한다. 법 규정 없이 실무적으로 이뤄지는 일인 만큼 직권인지 월권인지 애매한 회색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회색지대에서 공무원은 수사 위험성에 노출된다. 예를 들면 공무원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상대방 또는 제3자가 직권 행사로 받아들여 직권남용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법정에서 혐의를 벗는다고 해도 지난한 수사와 재판을 거쳐야 한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직권을 행사하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이런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남용의 모호성


그 다음은 '남용'이다. 남용은 공무원의 직권이 올바르게 행사됐느냐를 따져 판단한다. 문제는 누가, 언제 판단하느냐에 따라 판단 결과가 뒤집히기 쉽다는 것이다. 박상옥 대법관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소수의견에 이 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정부가 정부 비판 성향 문화·예술인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했다는 내용이다. 다수의견은 박근혜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문화다양성을 파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으므로 범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대법관은 "구체적인 금지규범을 특정하지 않은 채 추상적인 헌법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돼 죄형법정주의가 전면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누구나 남용의 모호성을 파고들어 정무적 실수, 정책 실패를 권력남용 범죄로 몰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도 남용 모호성의 위험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 전 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우 전 수석의 감찰을 받고 좌천됐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이 직권남용 피해자를 자처했다. 검찰은 이들 진술을 토대로 직권남용 혐의를 구성했지만, 1심 재판 결과 감찰은 정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4년 전 예견된 '숙청 도구화' 논란, 입법으로 '선택' 내려야


직권남용죄의 모호성 논란은 14년 전 예견된 일이다. 2006년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직권남용죄 조문은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며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에서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직권남용죄가 모호하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권성 당시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달랐다.

권 재판관은 직권남용의 의미에 대해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할 뿐"이라며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권교체의 경우에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거의 사문화돼 있던 직권남용죄가 '적폐청산' 구호와 함께 살아났다는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판단이다.

"법의 공백"이라는 한 부장판사의 말처럼, 직권남용죄의 모호성을 해결하려면 입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직권과 월권 사이 경계와 남용의 해석 기준을 입법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직권과 남용을 명확히 정의해 조문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법적 혼란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선은 그어야 한다는 취지다.

여기서 현대사회에서 공적 영역이 날로 확대된다는 점을 감안해 직권남용 범위를 넓힐지, 아니면 공무원의 판단력과 자율성을 존중해 직권남용 범위를 좁힐지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호한 상황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주의를 부추길 뿐이라는 것이 법조계 진단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직권남용의 틀을 잡아야 할 시기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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