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김대리는 회식이 싫다. 비싼 밥 공짜로 사준다지만 그냥 집에서 혼자 라면 끓여 먹는 게 더 좋다. 회사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다. 업무 시간에 보는 걸로 족할 뿐이다. 김대리는 곧 있을 송년 회식 때도 밤 9시쯤 귀가할 예정이다. 슬쩍 빠져나올 수 있게 가방도 집에 두고 갈 생각이다.
40대 박차장은 회식이 싫지 않다. 회식 자리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그동안 직원들과 못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다. 즐겁게 술 한잔하고 나면 업무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회식 때마다 약속 있다고 빠지고, 몸이 안 좋다고 집에 일찍 가려고 하는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직장인들이 '회식'을 두고 온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1차 고깃집, 2차 노래방, 3차 호프집이었던 과거의 회식 공식은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은 여전히 회식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음주 중심의 회식 문화를 선호하는 기성세대는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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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송년회 계획 잡혀 있지만…"매일 보는 사인데 굳이 필요할까?"━
특히 2030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비롯한 회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20~30대 직장인 79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10명 중 7명(70.8%)이 '회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회식 스트레스를 느끼는 구체적인 이유(복수 응답)로는 △귀가 시간이 늦어져서(25.9%) △자리가 불편하기 때문(23.8%) △재미없음(17.3%) △자율적인 참여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16.7%) △회식이 잦기 때문(5.6%) 등이 꼽혔다.
직장인 H씨(31)는 곧 있을 회사 송년회에 마지못해 참석한다. H씨는 "부장님이 이번 회식에서 중요한 내용을 공지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 나눌 거라면서 꼭 참여하라고 했다"라며 "중요한 이야기해야 한다며 회식 자리를 자꾸 만드는데, 그런 말은 술 없는 자리에서 맨정신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불평했다.
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 직원들이 많지만 그래도 회식 자리는 계속 생겨난다. 주로 기성 세대가 주도한다. 한 건설업체 대표 P씨(56)은 "힘들게 일 시키는데 대표가 맛있는 것도 안 사주면 서운해하지 않겠냐"며 "외근하는 직원이 많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데, 두세 달에 한 번씩 회식 자리에서 얼굴도 보니 좋다. 회식이 자주 있는 건 아니라 직원들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L씨(29)는 "회사에 회식 좋아하는 40대 과장님이 있다. 매번 다른 지역 맛집을 알아 오는데, 퇴근한 뒤 직원들 차 나눠타고 30분~1시간씩 가서 저녁을 먹는다"며 "맛집이라서 다른 직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회식은 다들 알다시피 업무의 연장이다. 그냥 맛이 좀 덜해도 회사 근처 식당에서 먹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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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회식 문화…고기 대신 뮤지컬 즐긴다━
술자리 대신 뮤지컬, 연극, 영화 등을 관람하는 '문화회식'도 트렌드가 됐다. 직장인 P씨(24)는 "12월 초에 팀원들과 함께 문화회식을 했다. 팀장님이 연말까지 힘내보자면서 뮤지컬을 보자고 제안한 것"이라며 "뮤지컬도 재밌고, 저녁도 간단히 먹어 좋았다. 오랜만에 즐거운 회식이었다"고 전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처럼 회식 문화가 변하는 걸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대다수(97.9%)다. 전반적으로 이 같은 변화를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일부 4050 직장인들은 과거 회식 문화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직장인 L씨(54)는 "평소엔 젊은 직원들 원하는 대로 예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점심회식을 하지만 마뜩잖은 게 사실"이라며 "1년에 한 번 정도, 송년회에서는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술도 한 잔씩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미영 인크루트 대표는 "좋은 취지에서 마련된 회식이 오히려 직장 내 스트레스를 가중하거나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며 "만족스러운 회식이 되려면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음주 강요나 장시간 이어지는 회식 등을 자제하고 다양한 회식 형태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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