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쿠르드 비극에도 '세계의 경찰'은 없다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 2019.10.13 18:36
【악카칼레(터키)=AP/뉴시스】10일(현지시간)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의 악카칼레 지역 주민들이 터키군 폭격으로 시리아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앞서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은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 깊숙한 30㎞까지 진격할 것"이라며 "모든 테러리스트가 무력화될 때까지 작전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9.10.11.

터키가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족을 기습공격하고 나흘째지만 강대국들은 말로만 터키를 비판할 뿐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에서 물러나겠다는 기존의 기조를 지키고 있고 유럽도 대규모 난민 유입을 우려하며 선뜻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으로 사실상 사태를 촉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비용 부담을 들었지만 사실상 내년 재선을 위해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도주의' 등을 명분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유럽 국가들은 난민 유입 우려로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지는 못 하고 있다.

◇美 트럼프 "우리는 경찰이 아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미국의 해외 주둔 병력 축소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더이상 무거운 군사비용을 혼자 감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왜 우리의 동맹인 쿠르드가 아닌 독재자(터키)의 편에 서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시리아는 단기 작전이었어야 했고, 몇년 전에 철수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대는 싸우지(fighting) 않고 치안 유지(policing)를 하고 있을 뿐인데 "우리는 경찰이 아니라"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리아 주둔 병력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나 CNN에 따르면 올 초 3000명 수준으로 줄었으며 현재는 약 1000명으로 감소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유럽국가들에게도 당신들의 ISIS(이슬람국가)를 데려가라고 말했지만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서 시리아로 건너와 테러리스트가 된 IS와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6만~7만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유럽은 미국을 이용해왔다"며 "테러리스트들은 원래 있던 곳(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찰 포기 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도 시리아 철군 계획에 대해 "모든 부담을 우리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고 호구 노릇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현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해외 주둔 병력은 급감하는 추세다. 미국 국방인력자료센터(DMDC)에 따르면 해외에서 활동 중인 미국군 인력은 6월 30일 기준 17만7104명으로 10년 전인 2009년 35만2603명에 비해 약 50%가 급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말을 기준으로 하면 11%가 줄었다.


◇유럽, 난민 이송 협박에 손 묶여=대규모 난민 유입이 두려운 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0일 시리아 쿠르드족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우리 작전을 침략으로 매도한다면 우리는 문을 열고 360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당신들(유럽)에게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중동 난민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려면 터키를 거쳐야 한다. 터키는 난민 수용의 대가로 EU에게 보조금을 받아왔다. 독일은 터키가 난민을 막아주는 대가로 터키의 EU 가입을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으나, 독재정치를 이유로 가입을 거절하면서 유럽과 터키의 사이도 점점 멀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기구도 유명무실하다. 10일 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 비공개회의를 개최했지만 터키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통과시키지 못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폴란드 등 6개 유럽국가들만 공동성명을 통해 "터키의 군사작전을 크게 우려한다"면서 "일방적인 군사적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의안이 가결됐더라도 UN은 독자적인 군사력이 없어 터키군을 강제로 철수시킬 수단이 없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3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밝혔다. 수천명의 병력을 투입해 군사적으로 이기거나, 터키에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거나, 터키와 쿠르드족 간 협상을 중재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를 가장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CNN은 "중재는 지금까지도 계속 해왔던 일"라며 "현실성 있는 방안은 경제적 제재"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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