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도" 민간인 사찰, 국정원 '가짜 포청천'의 역사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최우영 기자, 유동주 기자 | 2019.08.27 05:05

[국정원 민간인 사찰]중정·안기부서 시작된 적폐…정권 마다 불거진 사찰로 '존재감'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헌법에 반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국가정보원은 정권 성향과 관계없이 꾸준히 위법을 자행해 왔다. 이들은 사찰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여론을 조작하고 정치에 개입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적폐의 뿌리는 군사정권에서 설립된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다. 이들 기관에서는 대공·공안 수사를 빌미로 초헌법적 사찰 등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안기부 청사가 있던 '남산'은 고문과 행방불명을 연상시키는 공포의 단어로 인식될 정도였다.

일생을 정보기관의 감시에 시달렸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1999년 안기부를 개편해 국정원으로 출범시켰지만 사찰 DNA는 여전했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대규모 도청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정원은 대통령 친인척을 비롯해 고위공직자와 시민단체, 노동조합 간부 등 1800여명을 불법 사찰했다. 이를 지시·묵인한 혐의로 임동원(1999~2001년)·신건(2001~2003년) 전 원장은 구속기소 돼 징역형을 받았다.

2000년대에는 인터넷 활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패킷 감청이 적극 활용됐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 회선을 오가는 불특정 다수인의 모든 정보가 패킷 형태로 수집된다. 로그인 기록, 인터넷 검색어 등이 모두 확인된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패킷 감청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부터 무려 28개월 동안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KT 인터넷 전용 회선을 감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패킷 감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치인 사찰도 국정원의 주요 먹거리였다. 정권 반대 세력 정치인들의 뒤를 털어 정권 유지에 도움을 주고 국정원의 활동은 보장받는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은 2009~2010년 방첩국 산하에 '포청천'이라는 공작팀을 꾸려 한명숙·박지원·박원순 등 유력 야당 정치인을 사찰했다. 당시 정권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 등 여당 의원들도 사찰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문성근, 김미화 등 진보 성향을 띈 인사 82명에 대해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유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이 최근까지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민간인 사찰을 해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민간인 사찰은 없다'던 문재인 정부의 정보기관 운영 방침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2015년부터 국정원 지시를 받아 민간인 사찰을 해온 A씨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나 "국정원 사람들은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버틴 조직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A씨는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민간인을 사찰했다.

A씨에 따르면 국정원은 구체적인 불법적 녹취·녹화 등을 지시했지만 오히려 "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 할 일은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죄의식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국정원 해당팀은 2013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도한 RO(지하혁명조직)를 적발해 실형을 이끌어냈다. 당시의 '달콤한' 기억은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위법 행위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국정원이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은 사찰의 역사로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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