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버스에서 독립운동 100년을 만나다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 2019.04.12 03:33

서울 도심 정류장, 강우규·김상옥 의거터.여운형 활동터 병기…임정 100년에 독립운동 지사 상기시켜

서울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예전에 못 들었던 이름들이 들린다.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어렴풋하게 들어본 듯도 하지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그곳을 지날 때는 그들의 이름을 매번 들려준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가 강우규 의거터로, 혜화동로터리가 여운형 활동터로 덧붙여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의거터 서울역 광장에는 두루마기를 입고 수류탄과 주먹을 꽉쥔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있다. 강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조선총독부 제3대 총독에 취임하려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린 사이토 마코토를 겨냥해 그가 타고 있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지금 동상이 있는 곳에서 폭탄은 터졌지만, 살짝 빗나가 암살은 실패했다.

강 의사는 현장을 빠져나갔지만 2주 후 일제의 밀정으로 인해 붙잡혔고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놀라운 것은 한약방을 경영하며 재산을 모아 교육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한 강 의사의 나이다. 60세에 거사를 벌인 그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몇 정거장을 더 가다보면 남대문시장앞은 이회영 활동터고 종로5가.효제동은 김상옥 의거터, 삼선교는 조소앙 활동터다. 김상옥 의사는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다 1923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다가, 일본 군경 1000여 명과 총격전을 벌였고 결국 자결했다.

이회영 선생은 6형제가 모두 항일운동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광복군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조소앙 선생은 올해 100주년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외무부장)했고 헌법의 기반이기도 한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주창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혜화동 로터리는 좌우합작 운동을 벌였던 여운형 활동터다. 여운형 선생이 극우 테러리스트의 흉탄에 세상을 떠난 곳이 혜화동 로터리였지만 그곳은 그의 주활동 무대기도 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었고 스스로를 희생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잊혀졌다. 의거터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동상도 있지만 서울역 강우규 의사 동상 주변은 혼란스럽다. 노숙인들의 술판 장소가 된지 오래고 비둘기 배설물이나 토사물로도 얼룩져 있다. ‘3.1운동 100주년’, ‘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김상옥 의사가 활동한 의열단의 대표자 김원봉은 독립운동의 거두지만 분단뒤 북한 정부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훈장 추서 여부를 두고 극한 대립이 이어진다. 여운형 선생 기념단체는 지난 정부에서 국가보훈처와 지자체 등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둥지를 잃었었다. 서울시(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은 버스정류장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하는 사업을 기획해 ‘시민들이 시내버스만 타면 빠르고 쉽게 100년 전의 독립 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 2월부터 해당 사업이 시작돼 꾸준히 그들의 이름이 불리워진 것은 작은 시작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인의 시(김춘수의 ‘꽃’)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꽃피는 계절의 꽃처럼 말이다. 강우규 의사는 순국 직전 시를 통해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어찌 감회가 없으리오’라고 했다. 나라는 있는데 그들은 떠나고 없다.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이육사의 ‘꽃’ 마지막 행이다. 꼭 임정 100년이라는 4월11일, 그들을 잇는 것은 온전히 후손들 몫이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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