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나체 사진 잘 봤어, 조심 좀 하지"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 2018.10.14 06:32

[디지털 성폭력-③]온·오프라인에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음란물 출연자 아닙니다"

편집자주 |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A씨(21·여). 그의 일상은 지난 몇 달간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헤어진 남자친구 B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A씨의 나체사진 때문. B씨는 헤어진 후 "내가 부를 때 나오지 않으면 사진을 한 개씩 올리겠다"며 협박하다 A씨가 만나주지 않자 사진을 유포했다. A씨 사진은 지난 2월부터 수많은 사이트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진과 함께 A씨의 이름, 휴대폰 번호, 주소 등 신상정보도 공개됐다. 이후 모르는 이들에게서 문자가 쏟아졌다. "사진 잘 봤다", "집 주소 아니까 나도 찾아가겠다" 등의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자 "조심 좀 하지 그랬어"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위로보다 앞선 말이었다. A씨는 "세상 모두가 내 숨통을 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가수 구하라씨(27)가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27)에게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으로 협박 당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화두가 됐다.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등 2차 가해가 위험 수위다.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통상 2차 가해는 사건 수사나 재판 중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가해자가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구씨 사례가 그랬다. 최근 사건과 관련해 최씨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계속해서 "구하라가 먼저 원해서 영상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구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측은 "최씨 주장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명백한 2차 가해 행위"라고 입장을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2차 가해가 당사자들이 아닌 '제3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구씨의 경우 사생활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동영상을 '소비'하려는 이들의 2차 가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4일 구글 트렌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날 1위 검색어는 '구하라 동영상'이었다. 검색 건수는 20만건 이상이었다. 지난 11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관련 기사 댓글 확인 결과 "구하라 동영상 갖고 계신 분? 줄 섭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 뿌려줬으면", "싸우든 말든 영상이 보고 싶다" 등 2차 가해가 줄을 잇는 상황이었다.

제3자에 의한 2차 가해는 주로 악성 댓글, 신상털기 등 온라인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뤄진다. 디지털 성폭력 관련 기사에 댓글로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잘하는 짓이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가 하면 "유포한 사람이나 찍은 사람이나 둘 다 잘못"이라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영상이 유포되기 시작하면 영상에 등장하는 피해 인물의 신상을 파헤치는 '신상털기'가 발생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 '문란한 여성'이라는 사회의 낙인에 고통
최근 불거진 가수 구하라씨와 그의 전 남자친구 사이의 영상 유포 협박 사건이 '구하라 사건'으로 통칭되고 있다. /사진=네이버 화면 캡처

2차 가해는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상까지 파고들어 피해자를 사회에서 소외시킨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에 따르면 여성 B씨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직원 B씨가 유포 영상에 등장해 회사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게 해고사유였다. 회사의 눈엔 B씨가 '피해자'가 아닌 '음란물 출연자'로 비쳤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피해자를 '문란한 여성'이라 여기는 사회의 시선이 심각한 2차 가해라고 입을 모은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2차 가해는 어느 사건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의 경우 2차 가해에 의한 피해가 유독 심한 편"이라며 "유포된 촬영물에 의해 피해자가 성관계 등 성적 행위를 한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 된다. 이 때문에 학교, 직장 등 사회에서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찍혀 추가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새겨진 '주홍 글씨'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 한 유명인 C씨의 사생활 영상이 유출돼 사회적 파장이 일은 바 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C 비디오 파문', 'C 사건' 등으로 남아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결혼 등 C씨의 대소사에도 이 사건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이에 SNS에서는 최근 구하라씨와 전 남자친구 사이의 영상 유포 협박 사건을 '구하라 사건'이 아닌 '최OO(전 남자친구) 사건'으로 부르자는 운동이 진행됐다. C씨 사례처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이름이 회자되며 발생하는 2차 가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취지에서다.

◇'리벤지 포르노' 단어 자체도 2차 가해…"폭력적 단어"
/사진=DSO
피해자 이름이 사건의 대명사가 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또 있다. 바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라는 단어다. 최근 구하라씨 사생활 동영상 관련 사건 보도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이 역시 담겨 2차 가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를 '포르노화' 한다는 문제가 있어서다.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교제 당시 촬영한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흔히 사용돼왔다. 하지만 '리벤지'(revenge)는 복수라는 뜻으로, 피해자가 복수를 당할 만큼 잘못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이다.'포르노'(porno)도 그렇다. 포르노의 어원은 그리스어 '포르노그라포스'(pornographos), 직역하면 '매춘부에 대해 쓰인 것'이다. 포르노라는 용어가 붙는 순간 피해자의 영상이 '음란물'이 된다는 것이다.

리벤지 포르노는 피해자에게 폭력적인 단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예나 디지털성폭력아웃(DSO) 대표는 "여성이 사랑을 나눴을 뿐인데 '리벤지 포르노'라 부르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며 "때문에 디지털 기기를 써서 촬영하고 유포·시청하는 일련의 행위를 '디지털 성범죄' 혹은 '디지털 성폭력'이라 지칭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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