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엄마·아빠 청춘 바친 빵집…딸이 지켰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07.15 05:05

[서울 동네 빵지순례기(記)-⑥]양천구 <이안으로, 온>…저온 숙성, 붓으로 소스 칠한 마늘빵 "자꾸자꾸 손이가요"

편집자주 | '빵지순례'란 말 아십니까. '빵'과 '성지순례'를 합친 말인데요. 맛있는 동네빵집 돌아다닌다는 뜻입니다. 멀리 제주까지 가기도 한답니다. 그만큼 요즘 빵순이, 빵돌이들이 많아졌다는 뜻인데요. 어느정도냐면요. 국민 1인당 1년간 빵을 90개 먹는다고 하고요. 제과점업 매출은 최근 4년간 50% 늘었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빵 매출이 쌀 매출을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밥심(心)' 대신 '빵심(心)'이란 말을 쓸만도 합니다. 빵순이, 빵돌이들을 위해 서울에 개성 있는 동네빵집들, 한 번 모아 봤습니다. 빵 굽는 냄새 솔솔 나시나요.

'모태 빵순이' 이자 서울 양천구서 마늘빵 맛집 '이안으로, 온'을 운영하고 있는 이다혜씨가 마늘빵 봉지를 들고 미소짓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마늘빵을 코 가까이에 댔다.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엄습했다. 참기 힘들어 재빨리 입안에 넣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마늘빵과 조우하는 찰나, 반전이 있었다. 겉은 '아삭' 부스러졌지만 속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그간 만났던 녀석들과 좀 달랐다. 깊숙한 곳까지 잘 배어 있는 아몬드청은 오물오물 거리는 내내 혀를 기분좋게 자극했다. '맛있다' 느끼는 순간, 마늘빵이 사라졌다. 그리고 1초 뒤 또 다른 마늘빵이 들려 있었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빵 봉지 문구. "자꾸자꾸 손이가네."


'모태 빵순이'였던 이다혜씨(28)는 부모님 삶과 꿈이 고스란히 담긴, 이 마늘빵을 좋아했다. 그래서 10대 후반부터 가게서 종종 일손을 도왔다. 이름은 '이안 베이커리', 서울 양천구 신월동 신곡시장에 있는 소담한 가게였다. 가게서 만난 또래 단골 손님들은 학생 때부터 군대에 다녀올 때까지 보며 꽤 친해졌다. 어머니가 아프셨을 땐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빵집 지키기에 나섰다. 3년간 가게를 함께하며 이씨는 꽤 성장했다. 어릴 때 몰랐던 부모님 고생을 많이 알게됐다. 이 빵 저 빵 고민하는 동안 가족의 정(情)은 더 돈독해졌다.
양천구 동네빵집 맛집 '이안으로 온' 전경. 이름은 부모님 성인 '이안'에 따뜻할 온(溫)을 붙여 만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다. 신월동 재개발로 정든 손님들이 많이 떠나게 됐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져갔다. 버티고 버티다 이씨 부모님은 지난해 10월,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가게 입구에 기대 손님들을 기다리며 한숨 짓는 부모님 뒷모습에 이씨는 속이 새까맣게 탔다. 노점에서 시작해 5번 사업 실패를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지킨 가게였다. 이씨는 "지켜드리고 싶다.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게를 살릴 묘안을 고민했다. 정답은 '택배'였다. 전국적으로 배송해 많이 팔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입소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활용하기로 했다. 가족 시너지가 여기서 났다. 이씨는 "20~30년 경력을 가진 부모님이 제품을 책임지시면 저는 마케팅을 맡아 서로 못하는 걸 채워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하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세웠다. 80종이 넘는 빵 종류를 과감히 줄여 '마늘빵'에만 주력하기로 했다. 왜 마늘빵이었을까. 이씨는 "10년 가까이 마늘빵이 꾸준히 나가는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주력빵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안으로 온' 대표 빵인 마늘빵. 저온서 장시간 숙성하는 공정법으로 부드러우면서 바삭하고 풍미가 깊다./사진=이안으로 온

이씨 부모님의 마늘빵은 경쟁력이 있었다. 저온서 장시간 숙성하는 공정법이 가능한 업체서 주문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2년간 수소문 하고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 공법을 거친 마늘빵은 부드러우면서 바삭했다. 4~5일 지나도 딱딱해지지 않았다. 마늘 소스는 분말이 아닌, 국산 생마늘과 8가지 재료를 중탕해 만든 '특제소스'였다. 이를 붓으로 하나하나 발라 구워 빵 앞뒤 골고루 스며들게 해 진한 풍미를 살렸다.

이씨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가게를 다시 차렸다. 이름은 '이안으로, 온'. 부모님 성인 '이안'에 따뜻할 온(溫)을 붙여 만든 정겨운 이름이었다. 편안할 온, 이리오다 온의 의미이기도 했다. 새 가게 근처 대형빵집이 있음에도 고민은 적었다. 이씨 손님들은 특별한 마늘빵을 먹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력빵 전략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마늘빵에 아몬드를 올려 만든 '아바크런치'. 물엿과 꿀을 끓여 만드는 아몬드 청을 바게트에 발라 바삭하면서 쫀득한 것이 매력이다./사진=이안으로온

가게를 다시 입소문나게 한 건 이씨 몫이었다. 정성스럽고 꼼꼼한 포장, 가게 이름 뜻과 히스토리가 담긴 종이, 상품 하나하나 설명과 보관방법, 유통기한까지 적어 예쁜 박스에 넣어 전국 곳곳에 보냈다. 가족 셋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는 손님들이 신뢰하는 포인트가 됐다. 마늘빵 정성과 맛에 감동한 손님들이 SNS며 블로그에 후기를 남겼다. 저절로 홍보가 됐고, 마늘빵 대표 맛집이 됐다. 이씨는 "하루 10봉도 안 나가던 빵이, 지금은 배송으로만 몇백배 이상 더 나간다"고 말했다. 부산·제주 등 먼 지역에서도 마늘빵을 맛보기 위해 기꺼이 주문한다.

저녁 8시 가게 문을 닫기까지 빵은 계속 채워넣으려 노력한다. 다만 재료 소진시에는 마감을 한다. 이씨 부모님 철학이다. 이씨는 "오전 빵 떨어지고 오후에 떨어져도 계속 한다"며 "더운데 그냥 가시면 어떡하냐.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게에 진열돼 있는 종류별 스콘(밀가루 반죽을 넣어 부풀려 만든 영국빵). 8가지 종류인데 골고루 잘 나간다./사진=남형도 기자

스콘(밀가루 반죽에 넣어 부풀려 만드는 영국빵)도 유명하다. 크림치즈스콘, 블루베리스콘, 초코스콘 등 종류도 8가지다. 12일 오후 가게서 만난 한 손님은 "원래 스콘을 좋아하는데, 다른 빵집보다 종류가 많다"며 "먹다 보면 텁텁한 느낌이 싫은데, 여기 스콘은 부드럽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가게를 하며 손님들과 나눈 정(情)이 가장 큰 보람이다. 한 번은 손님이 지인이 18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해 선물하고 싶다며 빵집을 찾아왔다. 또 다른 손님은 시력이 나쁜 아들이 유치원에 잘 적응하게 해주고 싶다며 전체에 빵을 돌리고 싶다고 찾아왔다. 폐업해 속상했는데, 가게 이전해준 게 참 고맙고 좋다는 응원글도 있다. 고등학생이었던 손님이 군대 다녀와서 '생각나서 왔다'고 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런 소중한 순간에 저희 빵이 갈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고 미소 지었다.
이다혜씨가 만든 일러스트. 이씨와 부모님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렸다./사진=이안으로온

이씨는 빵집 일과 함께, 경력이 많지만 마케팅을 못해 실패하는 빵집 사장님들을 위한 강사 일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씨는 "능력이 있음에도 SNS 마케팅을 못해 추락하는 분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들에게 도움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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