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며 수많은 동네빵집이 간판을 내렸다. 살아남은 빵집들은 더 세련된 디자인과 독특한 빵으로 맞섰다.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500원짜리 빵'을 고수하는 가게가 있다. 5000원짜리 빵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500원짜리 빵을 팔며 몇 년째 프랜차이즈 빵집과의 경쟁에도 밀리지 않는 빵집을 찾아갔다.
◇"500원 빵이 괜찮을까?"…'뻥' 뚫린 주방 한 눈에
빵이가는 서울 용두동에서 12년간 제빵사로 일한 김선기 대표(50)가 2013년 창업했다. 김 대표는 처음 빵집을 차리며 기본에 충실한 빵집을 떠올렸다. 저렴한 가격과 맛, 익숙한 빵이 김 대표가 꼽은 '기본'이다.
지난 11일 찾은 동대문구 이문동 '빵이가' 매장에 들어서자 매대 뒤편 주방에서 제빵사들이 분주하게 빵을 만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픈키친'이다. 재료를 빚고, 오븐에 넣고 꺼내는 모습까지 코 앞에서 볼 수 있다.
저렴한 빵을 접하면서 기자가 처음 한 생각은 품질에 대한 걱정이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뻥' 뚫린 주방을 눈으로 보자 걱정은 사라졌다. 김 대표는 "사람들은 아무리 저렴해도 맛없고, 못 믿으면 절대 안 먹어요"라며 오픈키친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7평 빵집서 하루 1000개 판매…'높은 회전율→신선한 빵'
제빵사 3명이 일하는 주방은 쉴 틈이 없었다. 여러 번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루 몇 번 정해진 시간에 빵이 나오는 가게와 다른 점이다. 한번 매대를 채운 빵은 한,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모두 팔렸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덕분이다. 끊임없이 빵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항상 매대에서 온기가 가시지 않은 신선한 빵을 찾을 수 있었다.
7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하루에 생산하는 빵이 1000개에 달한다. 김 대표는 "우리 가게에는 '세일빵'이 없다"고 말했다. 만든 지 오래돼 품질이 떨어진 빵을 덤으로 주거나 싸게 파는 일이 없다는 설명이다.
◇신상? 기본빵으로 승부…노인부터 아이까지 불렀다
김 대표는 "요즘은 모양이 특이하고 그럴싸한 빵이 인기를 끌지만 우리는 신선한 기본빵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 등 가장 기본적인 빵이 주력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신상' 빵에 밀려 기본적인 빵이 주변으로 밀려난 빵집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기본빵은 노인부터 아이까지 폭넓은 세대의 손님을 불러 모았다. 평소 빵집을 자주 찾는다고 밝힌 김모씨(66)는 "나이 든 사람 입에 익숙한 빵은 요즘 찾기가 쉽지 않다"며 "어릴 때 먹던 빵을 싸게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자꾸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 자부심 느끼며 일해요" 빵집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한 직원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직원은 빵집에서 일하는 7명이 모두 최소 2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멋쩍은 웃음을 짓던 김 대표는 "일하는 사람들이 오래 같이 하다 보니 팀워크가 참 잘 맞는다"고 말했다.
화려한 마케팅과 신상품으로 경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과 우아한 인테리어와 값비싼 고급빵으로 맞선 동네빵집의 홍수에서 기본으로 돌아간 빵이가의 모습은 오히려 신선했다. 김 대표는 "물가가 오를 때도 가격을 고수하는 건 손님들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며 "기교를 부리기보다 손님들에게 믿음을 주는 빵집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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