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야시장 전쟁, '늙은' 화시제 죽고 '젊은' 스린 떴다

머니투데이 타이페이(대만)=이동우 기자 | 2018.01.22 04:01

[전통을 혁신하다 시장의 대변신 4회-①]젊은 먹거리 공략 스린 주말 3만명 찾는 명소로

편집자주 | 같은 전통시장이지만 너무나 다르다. 어떤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장사도 잘 된다. 반면 어떤 시장은 고객의 발길이 뚝 끊어져 내리막길을 걷는다. 잘 나가는 시장과 망해가는 시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특유의 스토리로 무장한 '특별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전통시장이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일상의 장소이자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성공한 국내외 전통시장을 방문해 성공한 시장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전통시장 성공의 키워드를 도출해봤다.

대만 타이페이시(市)의 대표 야시장인 스린(士林)의 모습. 길 양쪽으로 늘어선 다양한 먹거리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 사진=이동우 기자

대만은 야시장의 나라다. 국민의 30%가 일주일에 4일을 집 밖에서 먹을 정도로 발달한 외식문화를 바탕으로 한 야시장은 관광상품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만 우리나라에서 대만을 찾은 관광객이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대만을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대만의 매력으로 야시장 문화를 꼽는다. 대만의 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를 앞세워 의류, 잡화 등 다양한 상품을 함께 선보이며 소비자의 생활에 다가간다. 전통시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의 모든 야시장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에 외면을 받은 야시장은 자연스럽게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변화의 흐름에 발맞춘 야시장과 그렇지 못한 야시장의 현재 모습은 너무도 극명하게 갈라져 있었다.

대만 타이페이시(市) 야시장 가운데 하나인 화시제(華西街)의 한산한 모습. 1970년대 전성기에 비해 방문객이 2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 사진=이동우 기자

◇70년대 전성기 상품 그대로…올드한 이미지에 갇힌 화시제

지난해 11월 21일 찾은 타이페이시(市)의 화시제(華西街) 야시장의 첫인상은 적막했다. 약 300m(미터) 길이의 시장 안은 오가는 사람을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심지어는 문을 닫은 상점도 있었다. 오후 5시로 조금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상인들의 표정도 활력이 없어 보였다.

린쥔팅 화시제시장 이사장은 "전성기에 비해 지금은 유동 인구가 20%밖에 남지 않았다"며 "그마저도 대부분은 40~50대이고 10~20대는 거의 오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화시제의 전성기를 1970년대로 기억했다. 당시에는 합법적인 매춘이 가능했고, 뱀탕 같은 여러 가지 자양강장 식품이나 약품이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 당시에도 젊은이들보다는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야시장이 화시제였다.

시대가 바뀌며 1997년부터 매춘이 불법이 되자 화시제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매춘과 연계해 인기를 끌었던 전통식품 위주의 먹거리는 젊은 감각의 소비자를 끌어들이기에 부족했다. 주변에 유명한 절인 룽산쓰(龍山寺)와 쇼핑 중심지 시먼딩(西門町)이 있지만 정작 젊은이들이 전혀 찾지 않는 시장으로 몰락했다.

수년 전에는 소비자 쇼핑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아케이드를 만들고 상점 등의 시설 정비도 진행했지만 매출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상품은 전통 자양강장 식품 등으로 내용 면에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상인은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지만 정작 대만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며 "다른 시장에 비해 '올드'(Old)한 이미지가 있어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만 타이페이시(市) 스린(士林) 야시장 중심에 위치한 한 사당에서 젊은 연인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 사진=이동우 기자

◇먹거리부터 쇼핑까지 한 번에…10~20대 유혹하는 스린

화시제 야시장을 방문한 다음 날인 22일 방문한 스린(士林) 야시장은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오후 6시 날이 어둑해질 시간인데도 20~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다들 한 손에는 옷가지가 들은 것 같은 쇼핑백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먹을 것이 들려 있는 모습이었다.

스린 야시장에는 2700여개의 상점이 모여있다. 30년 전 작은 사당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해 점차 규모가 커졌다. 하루 평균 방문객만 약 1만명에 달한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3만~5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야시장을 찾는다.

이날 시장에서는 한국에서 대만을 관광 왔다가 스린을 방문한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꼭 방문해야 하는 일종의 '관광 필수코스'로 자리 잡은 듯했다.

계 모임에서 돈을 모아 단체 여행을 왔다는 김모씨(56)는 "직접 와서 보니까 신기한 먹거리가 많아서 젊은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하다"며 "예전 어릴 적에 부모님이랑 찾았던 시골의 야시장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스린 야시장은 주변에 10여개의 중·고등학교와 4~5개의 대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젊은이들의 접근성이 좋다. 상인들은 젊은 층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타깃으로 집중 개발하면서 10~20대의 발길을 시장으로 돌렸다. 취급하는 물품도 의류, 신발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쇼핑과 식도락의 조화인 셈이다. 곱창과 면을 함께 숟가락으로 건져 먹는 곱창국수인 '아쭝멘션'(阿宗麵線), 굴을 전처럼 부친 '커짜이지엔'(蚵仔煎), 대만식 닭튀김 '지파이'(雞排) 등 다양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소비자들은 바로 옆에 있는 상점에서 싸고 질 좋은 옷을 살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스린 야시장을 찾는다는 스이징씨(33)는 "맛있는 먹거리를 먹고 거리를 둘러보며 쇼핑을 간단히 할 수 있어서 종종 방문한다"며 "대형마트와는 취급하는 물건들도 다르고 야시장만의 재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쑤원산 스린야시장 총상인연합회장은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쇼핑의 발달로 인해 젊은 소비자들이 조금씩 줄어들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젊은 세대가 먹거리를 즐기고 쇼핑을 통해 힐링하면서 야시장을 더 많이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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