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과 문재인, 쉬어버린 술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 2016.09.01 06:00

[the300]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문재인, '제2의 이회창' 안 되려면


# 옛날 중국 송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라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술 만드는 실력이 뛰어나고 친절했을 뿐 아니라 절대 양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술이 팔리지 않아 애써 만들어둔 술이 독째로 쉬기 일쑤였다. 고민 끝에 장씨는 마을의 현인으로 통하는 양천이란 노인을 찾아갔다.

장씨의 사정을 들은 양천이 물었다. "혹시 자네 가게를 지키는 개가 사납지 않은가?" 장씨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렇긴 한데, 그게 술이 안 팔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양천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사나운 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어린 자식에게 술을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킬 때 자칫 자식을 물 수도 있는 사나운 개가 있는 가게로 보내겠나? 그게 술이 팔리지 않고 쉬는 이유일세."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外儲說右)편에 나오는 일화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는 뜻의 '구맹주산'(狗猛酒酸)이란 사자성어가 여기서 유래됐다. 한비자는 조정에 '사나운 개'에 해당하는 간신배들이 있으면 뛰어난 인재들이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뜻을 담아 이 글을 썼다. 그러나 사나운 개를 비단 간신배로만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선의든 악의든 어떤 세력이 결과적으로 인재들의 발걸음을 끊게 만든다면 그들이 바로 사나운 개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전당대회를 통해 당 지도부까지 '친 문재인계'(친문) 또는 '친 노무현계'(친노)가 석권하면서 비주류가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혹자는 '김종인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수권전략으로 '중도노선'을 내세우며 '탈 문재인' 드라이브를 건 데 따른 반작용으로 오히려 친문 세력이 결집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더민주의 대선 후보 경선은 하나마나란 얘기까지 나온다.


문제는 '대세론'이 오히려 본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회창 대세론' 속에 치러진 2002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후보 경선이 대표적이다. 최병렬·이부영·이상희 후보가 도전장을 던졌지만 경선은 예상대로 긴장도, 감동도 없는 '이회창 추대 이벤트'로 끝났다. 그리고 그해 겨울 대권은 대세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던 노무현 후보에게 돌아갔다.

양자도 아닌 3자 구도가 예상되는 내년 대선에서 일방적인 추대 절차나 다름없는 경선을 거치고 올라온 후보가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후보가 혹시 모를 단일화 과정에선 범야권 지지자들을 상대로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문재인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현미 더민주 의원조차 전당대회 결과를 본 뒤 트위터에 "대선까지 길이 더 복잡하고 험난해졌다. 소탐대실"이라고 썼을까.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경선 도전의지 자체를 꺾는 일극적 당내 구도가 유지된다면 문 전 대표가 '제2의 이회창'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전 대표의 기득권이 남아 있는 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정운찬 전 총리 등 잠룡들이 '들러리'나 서자고 스스로 날아들 리 만무하다. 손님의 발길을 막으면 술은 쉬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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