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서거]'주인' 잃은 상도동…골목엔 조기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 2015.11.22 16:06

[the300]유가족 슬픔·이웃 조기 걸어 애도…주민들 평온한 일상

22일 서울 상도동 주택가. 골목 오른쪽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이다./사진=머니투데이
22일 오전 9시10분.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골목길에 태극기 조기가 내걸렸다. 이곳 주민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없이 대문 앞에 조기를 걸고는 이내 집으로 들어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의 맞은편 집이다. 애도의 뜻으로 이웃이 내건 국기가 YS의 서거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날 0시22분 서울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아침나절 상도동 자택 주변은 적막했다. 인적은 드물었다. 퍼스트레이디(영부인)였던 손명순 여사가 집에 있다는 소식에 취재진, 경호인력들만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까지 이어진 한밤의 추위, 사저를 지키는 경찰의 긴장된 표정은 적막감을 더했다. 무엇보다 '상도동계'란 정치용어를 낳는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공간의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컸다.

상도동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외신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철회를 요구했고 그 결과 신민당 총재직 박탈·국회의원 제명과 함께 이곳에 가택연금됐다. YS 제명은 부마(부산·마산) 항쟁을 촉발했고 그는 자택 전화로 항쟁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1980년 신군부도 그를 가택연금했고 1년 뒤인 1981년 5월 연금에서 해제된다. 정치재개 후에도 전두환정부와 대립 끝에 1983년 민주화와 야당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이 단식이 23일 이어지며 전세계의 이목을 끈다.

그랬던 상도동 자택은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 뒤 떠들썩한 분위기도, 임기 말 혹독한 여론의 냉대도 겪으면서 그 자리에 서있었다. 격동의 시간을 견딘 것이다. 세월은 흘러 YS는 정치일선을 떠나고 마침내 이날 세상도 떠났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 앞. 김영삼(金永三) 문패가 선명하다./사진=머니투데이


오전 9시, 유가족으로 보이는 여성이 검은 상복차림으로 택시에서 내려 자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45분, 주차장 문이 열리며 검은 에쿠스 승용차가 집을 나섰다. 자택 앞의 긴장감도 조금 풀렸다. 한 주민은 "아침에 뉴스 보고 (서거 소식) 알았다"며 "안타깝지, 아쉽고…"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로 골목을 빠져나오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너무나 평온한 일상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는 손주들 손을 잡고 놀이터를 찾았다. 골목길 조그만 카페는 언제나처럼 문을 열었다. 성경을 손에 쥔 주민들은 삼삼오오 교회로 향했다. 조금전까지 경찰이 상주하는 골목 안, 높은 담장 아래서 긴장감에 휩싸였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문득 이 평화가 어디서 온 걸까 궁금했다. YS 서거를 처음 접하고 꽤 혼란스런 기분이었다. 이른바 '공과'에서 공도, 과도 많아 종합적 평가라는 게 쉽지 않다.

'공'은 대개 민주화 운동과 대통령 임기 초기, '과'는 임기 중후반에 집중되니 시기적으로도 공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과가 이후 국민의 삶에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단 점에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온 것은 전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고 3당합당으로 지금의 보수우위 정치지형을 만든 점은 야권의 비판을 받아왔다. 아들의 정치적 전횡은 또 어땠던가.

그럼에도 민주화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을 가능하게 했다. 정치지도자가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회, 제도, 문화적 안정 말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에 굵직한 줄기라면 그 한가운데 YS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평화는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의 성취인 동시에 김영삼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전 10시30분, 해가 높아지며 상도터널 윗동네 골목골목에도 볕이 들었다. 비로소 몸이 녹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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