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세간의 비난은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직원들의 성추행 문제 제기 하나만으로 이미지가 추락한 박 전 대표는 모두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명훈 감독의 사조직과 비리’ 문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꼬박 1년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하면서 경찰의 무혐의 판정을 받아내는 동안, 정 감독의 항공료 의혹은 더 불거졌고, 그의 앞뒤 안 맞는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이 사건이 정 감독 측근에서 야기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의 중심은 이제 정 감독 등 ‘윗선’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 정 감독의 앞뒤 안 맞는 언행…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박 전 대표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데에는 정 감독과의 불화가 원인이라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불화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박 전 대표는 그 시작을 ‘박00’이라는 이름 석 자에서 찾았다.
박 전 대표에 따르면 박씨는 정 감독 막내아들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2005년 정 감독이 서울시향 예술감독으로 오면서 당시 59세인 박씨도 함께 왔다. 당시 이팔성 서울시향 대표가 50세 입사 규정을 위반할 수 없다며 거부했지만, 정 감독의 도움으로 박씨가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박씨는 매년 10억씩 3년간 30억씩 협찬금을 따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박씨는 서울시향의 협찬금을 구하는 대신 정 감독의 개인재단인 ‘미라클 오브 뮤직’의 협찬을 따오기 위해 서울시향 명함을 이용한 것이라고 박 전 대표는 주장했다.
여기에 2013년 서울시 감사과의 정년 제도 도입 문제 제기로 70세를 코앞에 둔 박씨의 퇴직이 현실화하자 정 감독이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프랑스 출장에 가서도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박씨의 복직을 요구했고, 박 전 대표는 “서울시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2014년 6월 정 감독은 저녁 식사 자리에 박 전 대표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정 감독은 “박00을 다시 데려오라”며 소리를 질렀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전언이다.
정 감독은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맡은 지 10년째인 지난해 12월 연습실에서 박 전 대표와의 갈등, 자신의 횡령 부분에 대한 해명으로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런 것 모르는 사람이에요. 집안에서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말도 안되는 소리로…. 거기가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왜 그렇게 박씨 문제에는 열의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는지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다.
항공료 횡령, 개인 리사이틀 개최, 과도한 연봉, 정 감독 소속사 ‘아스코나스 홀트’의 일감 몰아주기 등 갖은 의혹에 정 감독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지만, 직원들의 호소문에는 “직원들이 불쌍하다”며 적극 나서고 있어 대조적이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을 만나면 “멋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면전에서 부정이나 거절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고개를 끄덕인다고도 했다. 이를테면 서울시향의 미래를 위해 수석 객원지휘자 섭외 문제를 들고 나오면 정 감독은 늘 “언제든지 환영합니다”라고 말한 뒤 “(공연기획 자문) 마이클 파인과 협의하세요”라는 똑같은 결론을 낸다고 했다. 파인의 결론도 똑같다. “그 사람은 비싸다” “연락이 안된다” 등으로 거절한다는 것이다.
◇ 박 전 대표는 걸림돌이었나…‘윗선’ 개입 증거
지난 8월 대질조사에서 나온 증거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추행 조작의혹’의 K씨를 ‘섭외’한 문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선 이 사건에 개입한 ‘윗선’의 흔적도 함께 발견됐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증언이다. 직원 17명의 마음을 쥐락펴락한 ‘윗선’의 명단 일부를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신념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직원과 단원 모두 정 감독에 대한 신뢰가 투철하고, 서울시향 대표 3명이 바뀌는 동안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성의 능력이 그렇고, 재계약 때마다 서울시가 정 감독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는 정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강해보이는’ 여성 대표가 원칙을 내세우며 변혁의 바람을 일으키려는 노력이 안정을 뒤흔드는 불안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시향 안팎의 평가다.
한가지 확실한 건 정 감독은 절대 나서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하지 않는다. 그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는 부인 구순열씨와 비서 백모씨를 통해야만 한다. 박 전 대표는 직원들이 호소문의 내용을 정 감독에게 알리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에 대해 “정 감독이 왜 내게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말하지 않고 서울시장에게 먼저 흘렸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향 관계자는 “호소문을 언론에 배포하기 전에 정 감독이 박 전 대표와 만났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호소문이 아니라, 단원 평가에 대한 직원의 실수 문제로 만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1년여간 공방이 벌어진 ‘사실 싸움’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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