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벗들과 놀던 고택…300년된 회화나무도 명물

머니투데이 김유경 기자 | 2015.05.23 08:00

[김유경의 한옥 여행]<5>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춘추민속관'

편집자주 | 지방관광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체험 숙박시설이 2010년 이후 매년 150여곳씩 증가해 2014년12월 기준 964곳에 한국관광공사는 2013년부터 우수 한옥체험숙박시설 인증제인 '한옥스테이'를 도입했다. 관광공사가 선정한 한옥스테이와 명품고택은 총 339곳. 이중에서도 빛나는 한옥스테이를 찾아 한옥여행을 떠나본다.

춘추민속관 전경. 오상규의 생가 '괴정헌' /사진=김유경기자
"매일 아침마다 옥천군 새들이 이곳에서 조례를 합니다. 두꺼비도 33마리나 살고 있죠. 잔디나 나무에 제초제나 농약을 쓰지 않는 이유입니다. 덕분에 마당에서 각종 약재를 채취할 수 있어요."

주인장 정태희씨 말에서 춘추민속관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난다. 자연 그대로 유지하려니 집안 구석구석 정씨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한옥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려면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든다. 오전 내 정씨와 연락이 안됐던 이유도 집안에 있는 돌들과 씨름하다가 병이 났단다. 하지만 손님이 오자 아픈 몸을 일으켜 집안 곳곳을 소개해준다.

2009년 충북 옥천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춘추민속관'의 역사는 12년 전 이매방류 선비 춤 전수자인 정 씨가 문향헌과 괴정헌 두 고택을 사들이며 시작됐다. 문향헌이 260년, 괴정헌은 160년 된 고택이지만, 매입 당시 두 고택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허물어져가고 있었는데 이를 정 씨가 매입해 보수·유지해 왔다.

정 씨는 "'문향헌'은 애국지사 범재 김규흥의 생가이고 '괴정헌'은 우국지사 괴정 오상규의 생가다. 일제 치하에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밭 팔고, 사랑채 팔고 하다보니 매입당시 소유주가 13명이나 됐다"며 "두 가옥의 담을 헐고 복원해 현재의 춘추민속관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상업지역이라 개발을 했다면 큰돈을 만졌을 수 있는 위치다. 40년 전 인근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생가가 허물어져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개발을 목적으로 사들였다면 '문향헌'과 '괴정헌'도 사라질 뻔 했다.

춘추민속관. 애국지사 범재 김규흥의 생가 '문향헌' /사진=김유경기자
1760년 청풍김씨 18대손 문향 김치신이 건립한 문향헌은 23대손 김규흥이 태어난 집으로 유서 깊은 전통 한옥이다. 흥선대원군이 야인시절 자주 찾아와 벗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9년 10월3일에는 흥선대원군의 종손 이석씨가 이집을 방문해 직접 石坡井(석파정)이라고 손글씨를 쓰기도 했다. 이석 씨의 글씨는 안채 뒤 우물(井) 위에 걸려 있다. '석파'는 흥선대원군의 호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 이름이 석파정(石坡亭)으로 음이 같다.

문향헌은 원래 97칸의 큰 고택이었으나 현재 'ㅁ' 자의 안채와 별채만 남아 있다. 김규흥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오랜 세월 감옥에 투옥되며 가세가 기울어져 가옥과 터가 쪼개져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가옥 일부는 소실됐다.

춘추민속관 '문향헌' 안채 뒤에 있는 장독대에서 주인장 정태희씨가 고택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유경 기자
문향헌의 바로 옆집이 1856년에 건축된 오상규의 생가 '괴정헌'이다. 'ㄷ'자 구조의 괴정헌은 춘추민속관 입구 쪽에 위치하며 현재 주인 정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6·25전란 때에는 인민군 사령부 거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부인 육영수 여사 생가를 방문할 때는 수행원들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옥스테이로 운영되고 있어 예약만 하면 누구라도 묵을 수 있다. 객실은 총 13개실이며 2인실은 6만원 정도다.


춘추민속관 '문향헌' 마당에 심겨진 300년된 회화나무 /사진=김유경기자
충청북도내 유일한 명품 고택이다 보니 이곳에 심겨진 나무들도 명물이다. 선비의 상징인 회화나무가 문향헌 마당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있다. 문향헌 지을 때 심겨졌으니 300년은 족히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목이 된 석류나무도 눈에 띈다.

나무 뿐 아니라 돌과 각종 옛 물건들이 구석구석 배치돼 있다. 정씨가 한 때 개인 박물관을 운영했을 정도로 소장하고 있는 오랜 유물이나 민속물이 2000품에 달한다. 괴정헌 뒤로는 가마솥과 아궁이가 있고 장독대와 항아리들도 즐비하다.

아쉬운 건 걸출한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고택이 지원을 받지 못해 처마 밑 곳곳이 떨어져나가고 제대로 된 기와를 올리지 못해 비가 새는 등 문제가 많다는 점이다. 결국 주인장도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역 주민에게 매각을 결정했다. 정 씨는 올해 말까지만 춘추민속관을 운영한다.

정 씨는 "고택을 사들인 직후 기둥과 처마를 일일이 칫솔로 6개월 동안 닦는 등 정성을 쏟았다"며 "하지만 앞으로 이 고택을 지켜갈 후대가 없고 공연에 대한 민원도 끊이지 않아 내려놓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춘추민속관 '괴정헌' /사진=김유경 기자
춘추민속관 인근에는 시인 정지용 생가와 육영수 생가가 복원돼 있어 마실가기에 좋다. 100여 년 세월이 담긴 옥천 죽향초등학교와 대청호, 반딧불 숲도 고택 인근에 있다. 실개천 따라 한 바퀴를 돌아도 좋고 향수 조각공원과 저수지, 1912년에 지어진 교회도 볼거리다.

춘추민속관에선 집에서 직접 담은 문향헌 약술도 맛볼 수 있다. 투숙객에겐 한잔 무료로 주기도 하지만 까페에서 8000원에 판매하기도 한다. 식사도 예약시 가능하다.

☞'춘추민속관' 숙박팁

▶ 체험 = 가마솥에 밥 짓고 한식 찬을 만들고 옻된장과 효소차, 문향헌 약술 만드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예술인 주인장의 풍류 따라하기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체험이 된다.

▶교통 = 무궁화호를 타면 옥천역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다. KTX를 이용할 경우 대전역에서 하차하면 607번 버스로 3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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